한국전력이 사업보고서를 통해 문재인 정부의 '탈(脫)원전'(에너지 전환) 정책으로 인해 재무 여건이 악화할 것이라고 인정했다. 한전은 그동안 '탈원전'을 밀어붙이는 정부를 의식해 실적 악화의 원인이 탈원전 정책 때문이라는 것을 극구 부인해왔다.

한전은 지난 1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공시한 2018년 사업보고서 중 '이사의 경영진단 및 분석의견'에서 "국제 연료 가격 상승 및 원전 이용률 하락에 따른 민간 발전사로부터의 전력 구입량 증가로 인해 구입 전력비가 상승, (2018년에) 2조1933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한전은 2016년 12조원, 2017년 4조9000억원의 영업흑자를 기록했으나, 작년에는 2080억원의 적자로 돌아섰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원료비가 싼 원전 가동을 줄이고, 값비싼 액화천연가스(LNG)와 석탄 발전의 비중을 높였기 때문이다.

한전은 지금까지 실적 악화 원인이 국제 연료 가격 상승 등이라고 주장해왔지만 상장사로서 투자자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야 하는 사업보고서에서는 탈원전 때문임을 구체적으로 명시한 것이다. 한전은 사업보고서에서 탈원전과 신재생에너지 확대 정책 때문에 앞으로 실적이 더 악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보고서는 "정부의 에너지 전환 정책 추진으로 203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중을 20%까지 확대하는 과정에서 전력망 확보를 위한 투자비 증가 및 전력망의 안정적인 연계 문제가 대두될 것"이라며 "신재생에너지 확대에 소요되는 정책 비용의 증가 등으로 재무 여건이 악화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혔다.

그동안 정부·여당은 한전의 대규모 적자에 대해 탈원전 때문이 아니라고 일관되게 주장해왔다.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 9일 원내대책회의에서 "한전 적자는 탈원전 때문이 아니라 국제 연료 가격 급등 때문"이라고 했고, 같은 날 산업통상자원부도 '보도 해명 자료'를 통해 "2018년 한전 및 그 자회사인 한수원과 발전 5사의 실적 하락은 국제 연료 가격 상승, (발전소 정비 등으로 인한) 원전 이용률 하락이 주원인이며, 에너지 전환(탈원전) 정책과는 전혀 무관하다"고 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25일 본지와의 통화에서도 "한전의 적자 원인이 탈원전에 기인했다는 건 사실과 다르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공기업인 한전의 적자를 초래한 건 상식에 속한다고 말한다. 손양훈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는 "원가가 싼 원전 대신 비싼 LNG와 석탄 발전 비중을 높이면서 전기료는 올릴 수 없으니 한전이 적자를 보는 건 당연한 결과"라며 "탈원전이 한전 적자의 원인이 아니라고 하는 건 그야말로 억지에 불과하다"고 했다.

한전 관계자는 25일 "사업보고서에서 정부의 에너지 전환 정책으로 미래에 재무 여건이 나빠질 것이라고 전망한 건 맞는다"면서도 "작년도 적자 원인을 탈원전 탓으로 돌린 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한전은 탈원전·재생에너지 확대에 따른 실적 악화를 걱정하고 있지만, 정부는 여전히 탈원전 외길을 고수하고 있다. 정부는 최근 제3차 에너지 기본계획 초안을 공개하며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2040년까지 최대 35% 수준으로 늘릴 것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실현 가능성이 극히 낮은 무리한 정책을 밀어붙여 국가 에너지 기반을 흔들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