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혈주의 문화가 강했던 시중은행들이 정보기술(IT) 전문가 모시기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부서장 등 임원급부터 외부 전문가를 초빙하고, ‘겸직’을 늘려 디지털 전환에 효율적으로 조직 개편에 나서고 있다.

◇은행권, IT전문가 수혈 집중

26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금융(105560)지주는 KB데이타시스템 대표이사로 최재을 전 메트라이프생명보험 최고운영책임자(CIO)를 추천했다. 최 후보자는 메트라이프생명보험과 현대카드 최고운영책임자를 지낸 금융 IT전문가다.

KB금융지주가 외부에서 IT전문가를 데리고 온 것은 이번만이 아니다. KB금융지주는 이달 1일 윤진수 전 현대카드 상무를 KB금융지주 데이터총괄임원(CDO)으로 영입했다. 윤 본부장은 KB국민카드 데이터전략본부장도 겸할 예정이다.

4대금융지주가 디지털 전문인력 모시기에 나서고 있다

우리금융지주도 IT자회사인 우리에프아이에스의 이동연 대표이사에게 은행 최고정보책임자(CIO)를 겸임케했다. 김성종 우리은행 상무에게는 우리은행 IT그룹 산하에 새로 마련되는 IT기획단장과 우리에프아이에스 은행서비스그룹장을 함께 맡겼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우리은행과 우리에프아이의 IT관련 의사결정 과정을 간결히 해 업무를 신속하게 추진하려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금융지주는 다른 금융지주사 인재도 영입하는 등 공격적으로 인재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지난 해 6월에는 황원철 전 하나금융투자 상무(CIO)를 디지털 금융그룹장으로 영입했다. 황 상무는 2008년부터 KB투자증권 CIO, 하나금융투자 CIO 등을 역임한 디지털·IT 부문 전문가다.

신한금융지주는 인공지능 전문가이자 삼성전자(005930)와 IBM 등에서 활동했던 장현기 박사를 신한은행 디지털R&D센터 본부장으로 임용했다.

◇실무 담당할 IT 전문 신입·경력 채용도 활발

실무급의 디지털인재 채용도 본격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신한은행은 25일 디지털·ICT 분야 채용을 연중 수시 채용으로 전환한다고 밝혔다. 또 ‘디지털·ICT 신한인 채용위크’를 신설해 직무별로 필요한 인재를 적기에 채용할 수 있도록 했다.

BNK부산은행도 디지털 분야의 경력 직원 채용 채용 공고를 내고, 빅데이터 플랫폼 관리, 데이터 시각화, 챗봇 운영 등의 경력자를 충원했다. KB국민은행도 IT·신기술·디지털 분야의 경력직원을 상시 채용하고 있다. KB국민은행이 지난해 뽑은 디지털 경력직원의 수는 전년도보다 4배 많다.

다만 은행의 경직된 조직문화는 둥지를 옮긴 디지털 전문인력들을 다시 떠나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공채 출신 은행원간의 승진 경쟁 문화에 치이고,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하고 성과만 내야 하는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직장인 익명앱 블라인드 등에서 나오고 있다.

시중은행의 한 디지털 경력 채용자는 "공채 출신들이 성과내기에 급급해 경력으로 회사를 옮긴 IT개발자에게 무리하게 성과를 요구하고, 자신의 성과인양 바꿔치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또 다른 경력 채용자는 "사용자 경험을 중시하는 UI·UX 분야는 추세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해야 하는데, 보고서 기안을 올리고 승인을 받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지나치게 딱딱한 분위기는 업무 의욕을 꺾는 요인"이라며 "기술회사와는 너무 달라 이를 감안하고 은행권으로 이직해야 한다"고 했다.

시중은행도 이런 문제점을 알고 개선에 나서고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빠르고 유연한 업무 추진을 근간으로 한 ‘애자일(agile·민첩한) 문화’를 시중은행에 도입해서 많이 바꿔나가고 있다"고 했다. KB국민은행은 2017년부터 애자일 문화 도입을 위해 힘쓰고 있다. 진옥동 신한은행 행장도 취임 기자간담회에서 "기회가 된다면 디지털 부서 사무실을 없애고 정보기술(IT) 개발자들이 현업에 나가 애자일 형태로 협업하는 형식으로 바꾸고 싶다"고 말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