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서울아산병원에서 열린 '의료 인공지능 개발 콘테스트'의 수상자들은 의사나 의대생들이 아닌 공대 대학원생들이었다. 최우수상을 받은 연세대 전기전자공학과 연구원팀이 개발한 것은 AI(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해 뇌 MRI(자기공명영상)에서 뇌종양의 일종인 교모세포종을 판명하는 시스템이었다. 이 대회는 CT(컴퓨터 단층 촬영), MRI 등 의료 영상으로 질환을 효율적으로 진단하는 인공지능 시스템을 개발하는 경연이다. 40팀이 참여해 8팀이 입상했다. 서울아산병원 측은 "AI 기술을 활용한 시스템이 상용화되면 기존에 시간이 많이 걸렸던 복잡한 분석도 단 몇초면 정확하게 해결이 된다"며 "다양한 의료 현장에 AI를 접목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했다.

의료기기 업체 뷰노가 개발한 '뷰노메드 본에이지' 시스템. 국내 1호 인공지능(AI) 의료기기인 이 제품은 어린이의 뼈 상태를 분석해 성장·발육에 대한 진단을 할 수 있다.

AI 기술이 의료 현장에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현재까지 AI 의료 기기로 식품의약품안전처 판매 승인을 받은 제품은 총 4개다. 대부분 사람이 하던 의료 영상 분석을 AI가 대신하는 영상의학 분야 기기다. 의료 기기 업체 관계자는 "연내 승인이 날 예정인 AI 의료 기기만 7~8개에 달한다"며 "AI가 의사 대신 의료 영상 분석을 대신할 날이 머지않았다"고 했다.

지난해 '국내 1호'로 승인을 받은 AI 영상 의료 제품 '뷰노메드 본에이지'는 현재 주요 병원에서 활용되고 있다. 엑스레이로 촬영된 어린이의 손목뼈를 분석해 어린이의 성장·발육에 대한 진단을 하는 AI 기기다. 이 제품은 우선 표준화된 어린이 손목뼈 사진을 AI가 머신러닝(기계학습) 방식으로 학습한다. 이를 토대로 실제 진료를 받는 아이의 엑스레이 영상과 대조하게 된다. 이 제품은 뼈마디의 간격, 뼈의 모양과 크기 등을 고려해 향후 아이의 성장·발육 상태가 어떨지 예측한다.

기존에는 의사가 약 300장에 달하는 표본 사진과 비교를 하며 뼈 상태를 분석했다. 10~20분 이상이 소요되다 보니 의사가 당일 판정을 내리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본에이지 제조 업체 뷰노에 따르면 AI 기기를 활용한 분석에 걸리는 시간은 20초 내외다. 정확도 역시 100%에 근접하는 수준이다. 이런 방식은 다른 의료 기기 분야에서도 폭넓게 쓰이고 있다. 최근 서울대병원이 도입한 '루닛 인사이트'라는 AI 의료 기기는 머신러닝한 데이터로 환자의 폐결정 여부를 판독한다.

그동안 '판독' 역할을 중심으로 진화해온 AI 의료 기기는 최근에는 환자가 병이 있는지 파악을 하는 '확진' 분야로도 영역이 확대되고 있다. 현행 의료법상 확진은 오직 의사만 할 수 있다. 다만 의사가 환자의 병을 판단할 때 AI가 정확성과 신속성을 끌어올릴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의료 기기 업계에 따르면 현재 안저 질환이나 뇌 질환 여부를 진단할 수 있는 AI 기기, 심장 상태를 파악해 심정지를 예측하는 시스템 등이 개발되고 있다. AI가 축적된 빅데이터를 토대로 질환의 유무를 판단하는 것이다. 의료 기기 업체 루닛은 폐암·유방암 환자의 조직을 분석해 치료 예측성까지 제시하는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의료계 관계자는 "실제 일부 대형 병원에선 축적된 임상 경험과 연구 역량을 토대로 민간 기업과 협력해 직접 의료 기기 개발에 나서는 경우도 있다"며 "AI가 환자의 상태뿐 아니라 앞으로 병이 호전될지, 악화될지 예후(豫後)까지 빠르고 정확하게 판단하게 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