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의 귀재'라 불리는 손정의(62) 소프트뱅크 회장이 가상 화폐에 투자했다가 1500억원에 달하는 손실을 본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23일(현지 시각)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손 회장이 가상 화폐 가격이 최고점을 찍었던 2017년 말에 거금을 투자했다가, 가격이 추락하기 시작한 2018년 초 손절매(손해를 감수하고 파는 것)해 1억3000만달러(약 1493억원)에 달하는 손해를 봤다"고 보도했다. 코인 '광풍'이 불었던 지난 2017년 말과 비교해 2018년 초 가상 화폐 가격은 50~80% 수준으로 급락했다. 매매 시점과 손실 규모로 미뤄봤을 때 손 회장은 2017년 말 당시 3000억~4000억원 규모를 투자한 것으로 추측된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오른쪽 사진)

폭락 이후 1년이 지났지만, 가상 화폐 시장은 여전히 침체 상태다. 대표 가상 화폐인 비트코인 가격은 2017년 12월 1개당 약 2만달러(약 2298만원)에서 지난해 말 3100달러까지 추락했다. 최고점 대비 84.5% 빠진 것이다. 비트코인 가격은 올 들어 회복세를 보이고 있으나 여전히 최고점의 4분의 1 수준인 4000~5000달러 사이에서 답보 상태다.

◇폭락 1년… 업계는 대대적 구조조정 중

국내외 가상 화폐 거래소들은 경영난으로 줄폐업 위기에 몰렸다. 지난달 16일 홍콩 가상 화폐 거래소 게이트코인이 자금난으로 파산했고, 지난 9일엔 캐나다 가상 화폐 거래소 쿼드리가 파산했다. 쿼드리는 제럴드 코튼(30) 대표가 지난해 12월 인도 여행 중 사망하면서 거래소의 개인 키(비밀번호)를 분실, 고객이 맡긴 1억9000만 캐나다달러(약 1624억원)어치의 가상 화폐를 날린 거래소다. 업계 관계자는 "2018년에만 전 세계에서 1000여 개의 거래소가 문을 닫았다"고 말했다.

국내 가상 화폐 거래소들도 마찬가지인 상황이다. 지난 16일 코인네스트가 서비스를 종료했고, 코빗을 운영하는 NXC는 10일 미국에 설립했던 코빗USA법인을 청산했다. 각종 추문도 줄 잇고 있다. 지난달 12일 코인업의 강모(53) 대표는 수천억원대 투자 사기 혐의로 구속됐고, 뉴비트 대표는 사기·횡령 혐의로 이용자들에게 고소를 당했다. 임원진의 횡령 논란이 있었던 올스타빗은 대표를 교체했지만 거래 규모가 매우 저조한 상태다.

이른바 국내 4대 가상 화폐 거래소 중에는 업비트를 제외한 3사 모두 적자다. 빗썸은 보유한 가상 화폐 자산의 가치가 폭락하면서 지난해 2055억원의 당기순손실을 냈다. 코인원코빗도 지난해 각각 58억원과 458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가상 화폐 업계 관계자는 "국내 100여 개 가상 화폐 거래소 중 상당수가 하루 거래량이 수십만원에 불과한 빈사 상태"라고 말했다.

◇가상 화폐, 반등 가능성은 여전히 '불투명'

가상 화폐의 미래에 대한 평가는 두 갈래로 나뉘고 있다.

올 들어 JP모건, 페이스북과 같은 해외 대기업들이 가상 화폐 시장 진출을 발표하면서 '상승장'을 기대하는 여론이 생겼다. 실제로 24일 비트코인 가격은 지난 1월 1일에 비해 48% 오른 5621달러를 기록했다. 재작년 수준까지 반등은 못했으나 "그래도 바닥은 찍은 것 아니냐"는 기대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대표 낙관론자인 미국 투자 회사 펀드스트랫의 톰 리 대표는 지난 22일 "비트코인이 전 고점을 회복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비관론도 있다. 특히 가상 화폐 관련 규제가 많은 한국에선 가상 화폐 가격이 2017년 수준 이상으로 회복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한상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가상 화폐는 아직 투자가 아닌 투기의 영역"이라며 "가상 화폐 시장에서 역량이 없거나, 사기로 판명된 업체가 도태되는 '옥석 가리기'가 이뤄져야 다시 블록체인 기술의 가치로 평가받는 정상적인 시장이 조성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