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부장 K(44)씨는 신용대출 한도를 확인하기 위해 지난 18일 점심 시간을 쪼개 은행에 다녀왔다. 아내에게도 똑같은 주문을 했다. 전세를 놓은 경기도 미사신도시 아파트의 재계약 시기가 석 달 앞으로 다가왔는데, 전세 시세가 1억원 가까이 내렸기 때문이다. A씨는 "대출을 아무리 끌어모아도 세입자에게 돌려줄 돈이 2000만원 정도 부족한데, '서울 강동구 대량 입주가 시작되면 전세금이 더 내릴 수도 있다'는 부동산 얘기에 가슴이 답답하다"며 "출퇴근 거리가 멀어지더라도 직접 입주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작년 말 서울 송파구 '헬리오시티' 아파트 9500여 가구 입주에 이어 올해 강동구에 총 1만여 가구 아파트 입주가 다가오면서, 송파·강동권의 '배후 신도시' 주택 시장이 출렁이고 있다. 이미 한 차례 크게 내린 전세 시세가 다시 내리기 시작했고, 매매 시세까지 하락 조짐이다. 정작 주택 가격 충격의 진앙(震央)인 서울 주택 시장은 오히려 회복세다.

강동 1만 가구 입주에 떠는 미사·위례

19일 부동산 정보업체 '부동산 114'에 따르면, 올 한 해 서울 강동구에서 입주 예정인 새 아파트는 약 1만1000가구. 올해 서울시내 전체 예상 입주량(4만3237가구)의 25% 이상이 강동구 아파트다. 더욱이 입주하는 아파트 대부분이 소비자 선호도가 높은 1000가구 이상 '대단지'다. 6월 '래미안명일역솔베뉴'(1900가구), 9월 '고덕그라시움'(4932가구) 등이다.

그 여파가 인접한 하남 미사신도시와 위례신도시 등 배후 신도시 주택 시장에 밀려들고 있다. 강동구와 인접한 경기 하남시 미사신도시에서는 미사강변2차 푸르지오 아파트 전용면적 93㎡의 월간 전세금 평균(실거래 기준)이 작년 10월 4억4700만원이었는데, 지난달엔 3억8000만원까지 내렸다. 최근 중개업소에는 3억5000만원짜리 매물까지 나왔다.

매매 가격 추가 하락 전망도 나온다. '미사강변푸르지오' 84㎡의 경우 작년 11월 최고 9억원에 팔렸지만, 올해 2월에는 8억1000만원(19층)에 거래됐다. 지금은 7억원대 중반 매물도 나와 있지만, 거래가 잘 되지 않는다.

이미 한 차례 시세 하락을 겪은 위례신도시도 추가 하락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위례롯데캐슬 전용 84㎡는 작년 10월 5억5000만원이던 전세 시세가 헬리오시티 입주 시작(작년 12월) 이후 4억2000만원까지 떨어졌다. 안명숙 우리은행 부동산투자지원센터 부장은 "위례는 강동보다는 송파 영향을 더 받지만, 강동구 입주가 본격화하면 여파를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헬리오시티발(發) '1차 쓰나미'보다 올해 강동발 '2차 쓰나미'가 더 클 수도 있다"고 말했다.

"소비자 요구는 '외곽' 아닌 '서울시내'"

정작 시세 하락의 출발점인 헬리오시티의 시세는 거의 제자리를 찾았다. 이 단지 전용 84㎡ D타입은 작년 11월 전세 실거래 가격(이하 월평균) 5억1000만원이었지만, 올해 들어서는 지난달 6억4400만원, 이번 달 6억8000만원에 전세 계약이 이뤄졌다. 최고 7억5000만원짜리 전세 계약도 있었다.

이상우 유진투자증권 건설·부동산업 연구위원은 "신도시 거주자가 대량 공급된 헬리오시티로 대거 이주한 것으로 보인다"며, "결국 시장이 원하는 곳은 '서울과 가까운 곳'이 아닌 '서울시내'라는 게 다시 확인된 것으로 외곽 공급보다 재건축·재개발을 통해 서울시내 공급을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