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2019 상하이 모터쇼' 개막 전 행사가 열린 중국 상하이(上海) 국립 전시컨벤션센터. 중국 시장에서 폴크스바겐·GM에 이어 점유율 3위인 지리자동차가 전기차 '지오메트리A'를 선보였다. 지리차 관계자는 "한 번 충전으로 410㎞까지 주행할 수 있고, 공기저항계수(cd)는 0.23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현존 양산차 중 가장 낮은 cd를 자랑하는 메르세데스-벤츠의 A클래스 세단(0.22)과 맞먹는 수준이다. 지리차 관계자는 "중국 시장을 넘어 유럽 등 글로벌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개발했다"며 "우리가 인수한 볼보의 플랫폼(뼈대)을 기반으로 개발해 안전성도 높고, 전기차의 대명사처럼 돼 있는 미국 테슬라의 소형차 모델3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전기차"라고 말했다.

렉서스·재규어랜드로버·볼보 등 고급 브랜드가 줄줄이 부스를 차린 6.1관은 중국 업체 장성기차 산하 고급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 브랜드 웨이(WEY)가 한복판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 브랜드는 전시 부스에서 관람객을 태우고 SUV VV6가 장애물을 피해 앞뒤로 자율 주행하는 기술을 시연했다.

올해 18회째인 상하이 모터쇼는 중국 자동차 산업의 굴기(崛起)를 한눈에 보여주는 행사였다. 양(量)뿐 아니라 질(質)적으로도 중국 차의 성장은 위협적이었다. 현장에서 만난 한 미국 자동차 업체 임원은 "최근 상하이 모터쇼는 자동차 시장에서 중국의 기세가 얼마나 무서운지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행사"라며 "미국·독일·일본·한국 등 자동차 강국이 바짝 긴장해야 할 수준"이라고 말했다.

중국, 전기차·자율주행차 일류 도약하나

중국에서 열린 전시회란 점도 작용했겠지만 중국 업체의 전시 부스 규모는 폴크스바겐·혼다·도요타와 같은 글로벌 자동차 업체와 맞먹거나 그보다 더 컸다. 상하이자동차그룹은 아예 1.1관 전체를 통째로 빌려 그룹 전용 전시관으로 만들기도 했다.

16일(현지 시각) 상하이 모터쇼 개막 전 행사에서 중국 지리자동차가 인수한 영국 자동차 브랜드 로터스가 전시한 에보라 GT4에 중국과 영국 국기 무늬가 그려져 있다(위). 이번 모터쇼는 중국 자동차업체들의 굴기를 보여주는 현장이었다. 중국 1위 현지업체인 지리자동차는 완충 시 410㎞를 가는 전기차 ‘지오메트리A’를 선보였고, 장성기차의 SUV 브랜드 웨이는 스스로 장애물을 피해 가는 자율주행 기능(모델명 VV6)을, 니오는 자율주행 4단계 전기차 ET를 선보였다(아래 왼쪽부터).

중국의 기세는 특히 전기차, 자율 주행 분야에서 두드러졌다. 중국의 테슬라로 불리는 니오는 전기차 세단 ET를 공개해 업계 관계자와 취재진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니오는 레노보·바이두와 같은 중국 IT(정보기술) 기업으로부터 투자를 받아 2014년 설립된 신생 업체다. 이 차량에는 완전 자율 주행의 직전 단계인 '레벨4' 자율 주행 기술이 적용됐다. 니오 측은 "자율 주행 기능 사용 중 문제가 생기면 모든 책임을 회사가 지겠다"고 장담할 만큼 자신감을 보였다. 이 차량은 내년 출시된다.

샤오펑은 벤츠·현대차와 같은 전시관에 전시 부스를 차렸는데 자율 주행 레벨3 기술을 적용한 고급 전기 세단 P7을 전시했다. 이 차량은 올해 말 출시된다. 중국 업체들은 상하이 모터쇼를 전후해 이달에만 14개에 달하는 전기차 신모델을 출시했다. 둥펑자동차는 중국 화웨이와 손잡고 개발한 전기 자율 주행 버스를 세계 최초로 공개했다.

현대·기아차 등 글로벌 업체들, 신차 공개하며 중국 공략

지난해 중국에서 고전했던 현대·기아차도 신차를 대거 공개했다. 현대차가 전시한 중국형 신형 싼타페인 '셩다'에는 지문 인식으로 문을 열고 닫거나 시동을 걸 수 있는 기술이 세계 최초로 장착돼 눈길을 끌었다. 소형 SUV인 신형 ix25, 링동(아반떼) 플러그인하이브리드(PHEV), 엔씨노(코나)도 함께 전시했다. ix25는 2014년 출시 후 중국에서 누적 37만대를 판 전략 모델이다. 젊은 중국인을 겨냥해 새롭게 꾸민 신형 ix25는 하반기에 출시된다. 기아차도 전기 콘셉트카인 '이매진 바이 기아'를 전시했고 중국 전용 올 뉴 K3를 공개했다.

미국 GM은 쉐보레 트래커와 쉐보레 트레일블레이저라는 두 대의 SUV를 공개했는데 두 차량 모두 기존에 출시된 트랙스와 블레이저를 기반으로 중국 소비자가 선호하는 날렵한 디자인으로 모델을 손봤다.

폴크스바겐도 제타를 기반으로 전장(차의 길이)을 80㎜나 늘려 만든 '사지타L'을 전시회에서 선보였다. 벤츠는 C클래스·S클래스 등 기존 차량의 길이를 늘려 만든 'L'(long) 버전을 선보였다. 중국인들이 실내 공간이 큰 차량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도요타는 우리나라에서는 4730만원에 구매할 수 있는 대형 세단 아발론을 20만8800위안(약 3500여만원)으로 낮춘 모델을 내놨다. 현장에서 만난 글로벌 자동차 업체 관계자는 "중국 업체들의 내연기관 엔진은 아직 기술력이 부족하지만, 전장(전기 관련 부품)이나 인포테인먼트 기술은 이미 선진국 업체들 수준에 올라온 것 같다"며 "GM·폴크스바겐·현대차 등이 더 이상 중국 업체들을 무시할 수 없게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