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브란덴부르크 ‘빌리 브란트’ 공항은 영어 BBI, 독일어 BER로 표기된다.

제조업 강국 독일에서 법과 질서는 모든 것의 핵심이다. ‘다 괜찮다(everything is alright)’의 독일어 표현은 ‘알레스 이스트 인 오르트눙(Alles ist in Ordnung)’ 즉 ‘모든 것이 질서 속에 있다’가 된다. 이런 사고방식은 전문성을 중시하는 공학 분야로 이어진다. ‘저먼 엔지니어링(german engineering)’에 대한 오랜 믿음은 이런 바탕에 있다.

하지만 아무리 ‘엔지니어 마인드’를 중시하는 국가라도 실패는 존재한다. 최근 발생한 가장 큰 실패는 2006년 시작됐다. 설계 결함, 공사비 증액, 부패와 비리 논란으로 총 6번 개항이 연기된 베를린-브란덴부르크 신국제공항(BER·베를린 신공항)이다. 비용은 당초보다 3배로 불어났고, 개항 시점은 2011년에서 9년 미뤄졌다. 정교함, 합리성, 원리 원칙으로 알려진 독일 명성에 지울 수 없는 얼룩이 생긴 것이다.

얼룩의 모든 것은 1990년대 통독 물결과 함께 시작됐다. 독일의 국제적 위상이 높아졌고, 분단의 장벽이 무너진 베를린 곳곳에는 자신감이 퍼져 나갔다. 1993년 유럽연합 탄생도 베를린의 ‘상승 욕구’를 증폭시켰다. 역사적 사건에 걸맞은 국제공항 건설은 대내외적인 순풍 속에 추진력을 얻었다.

그러나 당시 베를린과 구동독 지역인 브란덴부르크에는 거대 건설프로젝트를 책임질 정도로 숙련된 회사가 존재하지 않았다. 1997년 입찰공고가 발표됐지만 4년이 지나서야 건설회사 ‘호흐티프(Hochtief)’와 부동산회사 ‘IVG’가 공동건설 계약을 체결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신공항공사는 2013년 두 회사에 계약 취소를 통보했다. 비용이 불어나자 여러 도급계약을 통해 직접 관리하겠다는 의도였다. 계약 파기로 4000만유로를 손해배상금으로 물어줄 정도로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신공항공사는 수주자격 조건도 대폭 완화해 업체 간 경쟁을 유도했다.

1│4분의 1쪽 난 리더십

1989년 독일 국적항공사인 루프트한자를 필두로 기존의 베를린 쇠네펠트(Schönefeld) 공항 증축 논의가 시작됐다. 동시에 베를린 시와 브란덴부르크 주의 합병으로 나타날 ‘베를린-브란덴부르크 주’가 구상됐다. ‘베를린-브란덴부르크 국제공항’은 이런 과정에서 탄생했다. 신공항공사의 감독이사회 또한 베를린 시(37%), 브란덴부르크 주(37%) 그리고 연방정부(26%)로 구성됐다.

문제는 리더십이었다. 방향 설정의 통일된 기준이 필요했지만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연방정부의 입장이 각각 달랐다. 입지 선정부터 혼란의 연속이었다. 공항 건설을 위해 1993년 실시된 입지 평가에 따르면, 기존 쇠네펠트 공항의 증축보다 슈페렌베르크(Sperenberg)에 신공항을 건설하는 편이 나았다. 루프트한자도 쇠네펠트 공항 증축에 반대했다. 그러나 1996년 베를린-브란덴부르크 주 통합이 실패로 돌아가자 상황이 바뀌었다. 베를린 시 당국은 쇠네펠트 공항보다 40㎞나 더 먼 슈페렌베르크에 난색을 표했다. 통일의 상징인 빌리 브란트 전 총리의 이름을 딴 국제공항이 수도에 가까이 있기를 바랐던 것이다. 통일 여파로 비용 부담이 컸던 연방정부도 신축보다 기존 공항의 활용을 원했다. 베를린 신공항이 프랑크푸르트 공항과 뮌헨 공항의 경쟁력에 악영향을 주는 것도 우려했다.

한편 당시 브란덴부르크 주지사였던 만프레드 슈톨페(Manfred Stolpe)는 "쇠네펠트에 공항이 지어진다면 (소음공해 등으로) 민간 피해가 커질 것"이라며 슈페렌베르크 신축안을 지지했다. 추가비용 13억마르크(당시 독일 화폐)도 부담하겠다고 밝혔다. 공항건설사업의 리더십은 연방 차원의 비용압박으로 한 번, 시와 주의 주도권 싸움으로 한 번 더 쪼개졌다. 리더십이 반토막이 아니라 4분의 1토막이 난 것이었다. 1996년 쇠네펠트 공항 증축이 결정됐다. 신공항 건설 논의가 시작된 이후 7년이 지나서였다.

2│내부통제의 소멸

독일의 ‘엔지니어 마인드’는 이원적 이사제도에서 잘 나타난다. 경영이사회에 사외이사를 넣는 방식이 아니라, 별도로 감독이사회를 구성해서 경영이사회를 견제하고 전문성을 확보하는 방식이다. 2013년 비용 초과를 이유로 기존 두 회사와의 건설계약을 해지한 것도 감독이사회였다. 여기서부터 내부 통제가 방향을 잃기 시작했다. 계약 해지 전에는 두 민간회사가 자체적으로 책임경영을 하도록 돼 있었다. 총괄 책임을 지는 민간 투자자도, 민간회사도 없어지자 리더십에 혼란이 발생한 것이다.

최고의 국제공항을 원했던 이사회 뜻에 따라, 2008년 설계가 중도 변경됐다. 세계 최대 여객기 에어버스 A380을 수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공사기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후 수주업체 중 하나가 파산하면서 2011년 10월이었던 개항예정일이 한 번 연기됐다. 그 후 설계 결함으로 또 한 번 미뤄졌다. 원인은 화재경보시스템의 중대결함이었다. 조사 결과 무자격자가 시스템 공사를 담당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사회는 경쟁을 통해 효율을 높이고자 했다. 도급업체는 계속 증가해 2007년 7개에서 2015년 50개까지 불어났다. 민간기업의 전문가그룹이 아닌 신공항공사 이사회 지휘하에서는 그 많은 도급업체를 통제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졌다. 이후 15만 건의 설계결함이 드러났다. 2012년 공사비가 바닥을 보였지만, 부실논란으로 추가 대출도 힘들어졌다.

현실을 인식한 이사회는 공사를 책임질 회사를 찾았다. 그 결과 건축회사 ‘임테흐(Imtech)’에 기간 내 완공을 조건으로 공사 대금을 미리 지급해 주기로 했다. 하지만 이 회사는 200여 개 업체에 다시 하도급을 주고 4만 시간의 근로급여를 허위 계상하는 등의 부정행위를 저지르다가 2015년 파산했다. 이후 다섯 번째 개항 연기가 발표됐다.

이사회는 임테흐에 5000만 유로(약 630억원)의 거액을 선지급해놓고 회사의 재정상태나 업무 진행상황을 파악하지 않는 배임을 저질렀다.

3│비용절감의 역설

공항 입지 선정, 수주계약, 실제 건축과정에서 이사회가 보여준 모든 결정의 기준은 비용이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13년간의 비용절감 전략은 20억유로였던 총공사비용을 65억유로로 증가시켰다. 기존 공항 증축을 선택한 것은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였지만 큰 사회적 비용을 야기했다. 주민들의 반발로 연간 3000건의 공청회 보고서가 발행되고, 12만5000건의 반대 의견이 제출됐다. 소음공해, 손해배상 등 법적 분쟁은 10년간 이어졌다. 법원은 소음공해로 인한 야간비행 금지와 최대 10억유로(약 1조2799억원)에 달하는 소음방지설비 설치의무를 부과했다. 처음 공사를 일임했던 두 민간회사와 계약을 파기한 것도 비용을 아껴보려는 의도였다. 그러나 설계가 변경되면서, 당초의 비용절감 계획은 엉망이 됐다. 건축과정에서 증가한 복잡성은 여러 설계결함을 초래했고, 해결을 위해 더 많은 비용이 투입됐다.

또 공사 기간이 늘어날수록 인건비, 관리비, 이미 낡아버린 자재들의 교체 비용이 추가됐다. 시간이 너무 흐르면서 공항에 설치된 대형 모니터 750개를 신제품으로 다시 바꿔야 하는 상황이다.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Spiegel)’에 따르면 2020년까지 총공사비용이 70억유로에 달할 수도 있다.

작년 말 뤼트케 달드룹(Lütke Daldrup) 신공항공사 경영이사회장은 "2020년까지의 공사비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역시 의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설계결함이 가장 많았던 메인터미널을 뺀 나머지 시설만으로 개항할 수도 있다는 관측도 있다. [이코노미조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