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최대 주식 시장인 상하이증권거래소에 이르면 올 6월부터 미국 나스닥과 비슷한 IT(정보기술)주 전문 주식 거래소가 개장한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직접 지시해 만드는 '커촹반(科創板·과학혁신판)'이다. 커촹반의 상장 요건은 파격적이다. 상장에 소요되는 기간을 기존 수년에서 수개월 단위로 대폭 축소했고, 요건만 맞는다면 적자 기업도 상장할 수 있다. 미국 나스닥, 한국 코스닥에서 시행하는 테슬라 상장과 비슷하다. 중국 정부는 BAT(바이두·알리바바·텐센트)를 비롯한 중국 주요 기술기업들이 홍콩과 미국 증시에 상장했던 관행을 끊겠다는 계획이다.

현지 기술 기업들의 반응은 뜨겁다. 중국 신화망은 지난 4일 "커촹반의 요건이 공개된 지 한 달 만에 51개의 기업이 상장을 신청했다"고 보도했다. 51개 업체 중 IT 관련 기업이 15곳으로 가장 많았고, 인공지능(AI)·클라우드·빅데이터 관련 기업(10곳)과 바이오기술(8곳) 기업 순이었다. 이 기업들이 커촹반 상장을 통해 확보하는 자금만 481억2700만위안(약 8조1700만원)에 달한다.

커촹반으로 가는 차세대 'BAT'

현재 투자자에게 가장 이목을 끌고 있는 업체는 저가 스마트폰 제조업체인 트랜션(傳音)이다. 트랜션은 평균 90달러(약 10만원)인 저렴한 제품으로 아프리카에 스마트폰 돌풍을 일으킨 업체다. 시장조사업체 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SA)에 따르면 작년 4분기 아프리카·중동 지역에서 트랜션 산하 스마트폰 브랜드의 시장점유율은 29%로, 삼성전자(27%), 화웨이(15%)를 앞섰다. 트랜션은 철저한 현지 맞춤형 제품으로 시장을 공략했다. 우선 통신업체 간 통화료가 높아 여러 통신사의 유심칩을 동시에 갖고 다니는 아프리카 소비자들의 특성을 반영, 2개 이상의 유심을 함께 꽂아 쓸 수 있도록 했다. 또 피부색이 어두운 이용자들을 위해 빛 노출량을 키워 얼굴이 밝게 나오는 셀카 기능도 더했다. 2013년에 창업한 트랜션의 작년 매출은 226억4600만위안(약 3조8400억원)이다.

그래픽=박상훈

초정밀 캡슐 내시경을 개발한 안콘(安瀚科技)도 커촹반을 통해 상장을 준비 중이다. 소프트뱅크차이나와 중국 재벌 2세 왕쓰총 등으로부터 투자를 유치했다. 기업 가치만 59억6000만위안(약 1조원)에 달한다. 안콘의 캡슐 내시경은 환자가 삼키기만 하면 로봇처럼 내장 속을 돌아다니면서 전면부의 초소형 카메라로 영상을 전송한다. 가축용 백신을 전문적으로 개발하는 커첸바이오(科前生物), 자동화 제조 설비를 개발·생산하는 리위안헝(利元亨), 반도체의 원재료인 웨이퍼를 생산하는 허젠마이크로(和艦科技) 등도 커촹반 상장을 준비하고 있다.

" 나스닥과 견주기엔 이르다" 지적도

중국 현지에서는 커촹반의 등장으로 주춤했던 중국의 '기술 굴기(堀起·우뚝 섬)'가 다시 활발해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나오고 있다. 중국은 지난해부터 미·중 무역 전쟁에 내수 침체 등으로 중소 IT 업체들이 줄도산하고, 대형 인터넷 기업들도 집단 감원을 단행했다. 하지만 커촹반 상장으로 기술 기업들이 대규모 자금을 수혈받으면 연구·개발(R&D) 등에 투자할 수 있는 여력이 커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알리바바·바이두·텐센트 같은 거대 IT 기업이 커촹반에 상장하지 않는다면 '찻잔 속의 태풍'에 그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로 중국 최대 스타트업인 디디추싱과 바이트댄스는 커촹반 대신 홍콩이나 미국 뉴욕 증시에 상장할 것이란 전망이 많다.

☞커촹반(科創板)

상하이증권거래소에서 개장 예정인 IT기술주 전문 주식 거래소. 작년 11월 시진핑 국가주석이 중국 유망 기술 스타트업이 해외 증시로 빠져나가는 현상을 막기 위해 커촹반 설립을 지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