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년 항공·수송 외길을 걸어온 조양호(70·사진) 한진그룹 회장이 8일 별세했다.

한진그룹은 "조 회장이 이날 새벽(한국 시각) 미국 LA 한 병원에서 폐 질환으로 별세했다"고 밝혔다. 한진그룹 관계자는 "조 회장이 지난해 12월부터 미국에 머물다 올 초 수술을 받고 건강을 회복했으나, 최근 병세가 급격히 나빠졌다"고 말했다. 지난달 대한항공 정기 주주총회에서 국민연금 등의 반대에 부딪혀 사내이사 연임에 실패한 뒤 충격으로 병세가 악화했다고 대한항공 측은 밝혔다.

고(故)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의 장남인 조 회장은 1974년 대한항공에 입사해 대한항공 사장, 한진그룹 회장 등을 역임하며 '수송보국(輸送報國)' 정신으로 한국 항공 산업 발전을 위해 헌신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진그룹 관계자는 "조 회장이 최고경영자로 재임(1992~2019)하던 동안 항공기가 77대에서 166대가 됐고, 국제 노선 취항지도 20국 52곳에서 44국 124곳으로 넓히며 글로벌 선도 항공사로 도약했다"고 말했다. 조 회장은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위원장과 조직위원장 등을 역임하며 민간 외교관으로도 활동했다.

재계에서는 현 정부의 한진 오너 일가(一家)에 대한 전방위 압박이 고인에게 큰 심리적 부담을 줬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진그룹은 2014년부터 총수 일가의 '갑질'과 배임·횡령·탈세 등 각종 논란에 휩싸이며 경찰·검찰·국세청·관세청 등 정부 기관 11곳으로부터 수사·조사를 받았다. 이 과정에서 한진그룹 사옥과 자택이 공개된 것만 18회 압수수색을 받았다. 정작 조 회장의 차녀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의 '물컵 폭행' 의혹에 대해 검찰은 무혐의 결론을 내리고 기소하지도 못했다. 조 회장을 포함, 한진 오너 일가에 대한 구속영장은 5차례 모두 기각됐다. 이후 검찰은 조 회장에 대해 90억원대 배임 등 5가지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조 회장의 별세 이후 대표 국적 항공사를 보유한 재계 서열 14위 한진그룹의 지배구조와 경영권 향방에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당장 한진그룹 지주회사 한진칼에 대한 오너 일가의 지분이 30%도 되지 않는데 상속세 부담으로 일부 지분이 매각될 경우, 행동주의 펀드 등의 경영권 공격이 거세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