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바이오 기업 셀트리온은 지난해 2889억원을 R&D(연구개발)에 투자했다. 창업한 지 20년도 안 된 기업이 50년 이상의 제약회사들을 제치고 가장 많은 비용을 R&D에 투자한 것이다. 항암제·관절염 치료제 등의 바이오 복제약은 물론이고 미래 먹거리인 바이오 신약 개발에도 비용을 대거 쏟아붓고 있기 때문이다. 셀트리온 관계자는 "향후 4~5년이 글로벌 바이오 시장 성패를 좌우할 것으로 보고 매출의 30%를 신약과 고부가가치 바이오 복제약 개발에 투입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주요 제약·바이오기업들이 R&D(연구개발) 투자를 늘리며 신약 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사진은 경기도 용인의 종근당 효종연구소에서 연구원이 신약 원료 물질을 살펴보는 모습.

본지가 7일 국내 상위 제약·바이오 기업 20곳(매출 기준)의 사업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전체 R&D 투자 합계는 1조3607억원으로 전년(1조1965억원)보다 14% 정도 증가했다. 1000억원 이상 투자 기업도 6곳이나 된다. 17곳이 R&D 투자를 늘렸다. 반면 유한양행·GC녹십자·대웅제약·종근당 등 상위 업체의 영업이익은 전년보다 적게는 2.6%에서 많게는 44.5%까지 감소했다.

기업들이 실적 악화에도 연구개발에 매달리는 배경에는 국내 제약 시장의 정체가 있다. 인구 증가 시대가 끝나고 조만간 인구 감소가 예정된 상황에서 현재 20조원 안팎인 내수 시장이 더는 확장될 여지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영업이익률(마진)이 많지 않은 복제약을 만들어 국내에서 먹고사는 과거의 비즈니스 모델은 한계에 달했다"면서 "신약 개발 성공 여부가 앞으로 제약 업계의 판도를 바꾸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신약에 사활 거는 제약 업체

대웅제약은 지난해 영업이익이 36.9%나 줄었지만 R&D에는 전년보다 8% 정도 늘린 1200여 억원을 투자했다. 대웅제약은 4~5년 전부터 꾸준히 매출의 10% 이상을 신약 연구에 쏟아붓고 있다. 성과도 나오고 있다. 대웅제약은 지난 2월 주름 개선 치료제 '나보타'가 미국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판매 허가를 받았다. 자회사 한올바이오파마와 공동 개발하고 있는 안구 건조증 치료제 'HL036'은 지난해 미국에서 임상 2상 시험을 끝냈다. 대웅제약 관계자는 "후속 신약 개발을 서둘러 내년까지 글로벌 50위 제약사에 진입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한미약품은 작년에 제약 업체로서는 가장 많은 금액인 1929억원을 R&D에 썼다. 매출의 19%를 신약 개발에 쏟아부은 것이다. 한미약품은 전체 매출에서 해외 제약사의 의약품 판매 대행이 차지하는 비중이 4%도 안 된다. 지난해 독자적으로 개발한 신약 판매가 늘면서 2년 만에 매출 1조원대를 회복했다. 국내 1위 백신 업체인 GC녹십자는 3~4년 전부터 R&D 투자 규모를 늘려 유전자 재조합 신약 개발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제일약품·일양약품 등 중소 제약사들도 지난해 신약 투자 금액을 각각 전년보다 67.4%, 50.6% 늘릴 정도로 공격적인 경영에 나서고 있다.

◇연구 시설 투자도 활발

국내 제약업체들은 2010년 초까지만 해도 매출의 상당 부분을 수입약 판매나 복제약 영업으로 올려 왔다. 글로벌 제약사의 의약품 특허가 끝나면 재빠르게 동일한 성분의 복제약을 팔아 이익을 남기는 식이었다. 이렇다 보니 국내 300~400개 제약 업체를 통틀어도 신약은 30개 안팎에 그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내수 시장 정체로 복제약으로는 생존 자체가 어렵다는 위기감이 팽배하면서 앞다퉈 신약 개발 경쟁에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장기적인 R&D 기반을 갖추기 위한 연구소 확장도 잇따르고 있다. 대웅제약은 최근 서울 마곡단지에 705억원을 들여 오는 2023년 완공을 목표로 신약 연구시설인 C&D 센터를 세우기로 했다. GC녹십자는 지난해 말 경기도 용인 본사에 아시아 최대 규모 세포 치료제 연구소인 셀센터를 구축했다. 정윤택 제약산업전략연구원 대표는 "신약 개발에 최소 10년 이상 걸리기 때문에 제약, 바이오 기업들의 R&D 투자액은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전망"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