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말이었습니다. 충북 괴산군 쌍곡계곡 입구의 미선나무마을에서는 제11회 미선나무 꽃 축제가 열렸습니다. 마을주민이 주도하는 행사라 그런지 축제라고 할 만한 규모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동남아에서도 단체손님이 찾아올 만큼 괴산군을 대표하는 행사로 자리매김하는 모양새였습니다.

제11회 미선나무 꽃 축제가 열린 미선나무마을

미선나무의 꽃에 ‘모든 아픔이 사라지다’라는 꽃말을 부여해 활용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모든 아픔과 함께 모든 슬픔도 사라졌으면 좋겠습니다.

이맘때면 미선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대접받습니다. 비교적 수수하고 흔한 이름이어서 제가 아는 미선이만 해도 다섯 명이 넘습니다. 괴산군의 축제장에서도 미선이라는 이름을 가진 분께 미선나무 묘목 하나쯤은 공짜로 제공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지나치게 상업적인 축제는 아니어서 좋았습니다. 하지만 미선나무 축제니만큼 미선나무와 관련된 상품이 많이 전시됐으면 하는 아쉬움이 좀 있었습니다.

미선나무의 꽃말을 활용한 작품

미선나무 축제가 열리던 날, 충북 진천군 초평면 용정리는 매우 조용했습니다. 찾는 이가 필자밖에 없어 고즈넉하기까지 했습니다. 그곳은 1917년에 정태현 박사가 미선나무를 처음 발견한 곳입니다.

세계적인 희귀식물의 최초 발견지라는 의미가 있어 1962년에 천연기념물 제14호로 지정됐었습니다. 하지만 무분별한 채취와 관리 부실로 7년 만인 1969년에 천연기념물에서 해제되는 비운을 맞았습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했음에도 무자비하게 손을 대고 그것을 제대로 관리·감독하지 못해 전멸시키는 것이 우리가 세계적인 희귀식물인 미선나무를 대하는 태도였습니다.

그런데 전멸(?)하지는 않았다는 제보가 있었습니다. 영양번식이 가능한 미선나무의 특성상 땅속에 남아 있던 뿌리에서 다시 자라나 상당히 많이 번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보았더니 정말로 많은 수의 미선나무가 새하얗게 꽃 피어 있었습니다.

초평면의 미선나무 자생지

천연기념물에서 해제된 지 50년이 지났고 다른 곳에서 자생지가 발견되면서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 방치되자 미선나무가 스스로 예전의 모습을 회복해 가는 것입니다.

혹자는 이런 말을 합니다. 흔히 생태계의 보고라 불리는 광릉숲이나 DMZ가 원래부터 생물상이 좋은 곳이 아니라 사람의 접근이 철저히 통제됐던 덕에 그렇게 된 거라고. 그것처럼 초평면의 자생지도 사람의 발길이 끊어지자 갱생의 기회가 새롭게 제공된 것입니다.

자생지에서 스스로 회복되어 가는 미선나무 군락

회복되는 자생지 주변에는 길마가지나무가 많아서 놀라웠습니다. 흰색으로 핀 건 미선나무, 노르스름하게 핀 건 모두 다 길마가지나무였습니다. 길마가지나무는 처음에는 거의 흰색으로 피지만 점점 노르스름한 색으로 변합니다. 둘 다 향기가 좋은 나무라 이 좋은 봄날을 꽃향기로 경쟁하는 듯했습니다.

미선나무 주변에서 자라는 길마가지나무

그렇다고 진천군 초평면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최초 발견지의 의미를 되살리고자 2010년에 초평면 용정리 산21-67 일원에 미선나무자생지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사실 진천군의 여러 곳에서 추후에 자생지가 발견되기도 했으니 미선나무의 고장으로 거듭나면 좋을 것입니다. 미선나무의 새로운 자생지를 발견하는 족족 천연기념물에 올린 괴산군과 경쟁하면서 말입니다.

미선나무자생지 기념비(충북 진천군 초평면 용정리)

올해는 3·1운동 100주년이자 미선나무 발표 1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유관순 누나가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던 그 해에 아우내 장터에서 30km도 떨어지지 않은 진천군 초평면에서 발견한 미선나무를 일본의 나카이 박사가 신종으로 확인한 해가 1919년으로 같습니다.

3·1운동 후 유관순이 독립만세시위를 벌인 때가 음력 3월 1일인 양력 4월 1일이었으니 아마 어디선가 미선나무 향기가 날리고 있었을 겁니다. 그 사실을 알았더라면 미선나무가 아니라 유관순나무라고 이름 지었을지도 모른다고 하면 지나친 비약일까요?

세계적인 희귀수종인지라 지난 2월 27일에 국회도서관에서 ‘미선나무 100년을 통해 본 우리나라 특산식물’이라는 심포지엄이 열리기도 했습니다. 새로운 식물자원의 개발과 식물주권의 확보를 위해 우리의 희귀특산식물에 대한 연구와 홍보가 꾸준히 이어질 필요가 있습니다.

2월 27일 국회도서관에서 있었던 미선나무 관련 심포지엄

사실 미선나무만 해도 이미 널리 알려진 식물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미선나무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이름 유래만 해도 그렇습니다. 공작의 꽁지깃을 붙여서 만드는 둥근 부채인 미선(尾扇)을 닮은 열매가 달리므로 꼬리 미(尾)자를 쓰는 미선나무입니다.

하지만 아름다울 미(美)자를 쓰는 미선으로 잘못 알려지고 있어서 안타깝습니다. 그게 잘못됐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홍보하기 좋은 이유에선지 몇몇 기관에서 의도적으로 아름다울 미(美)자를 써서 미선이라고 한다는 문구를 쓰곤 합니다.

잘못도 너무 많이 범하면 일반화하기 마련인지라 잘못된 정보를 별 의심 없이 베껴대는 기사 글이 많아졌습니다. 어느 게 맞는 건지 잘 모르겠으니까 아예 두 개의 유래담을 병기하는 자료들도 곧잘 보입니다.

미선나무의 이름 유래가 된 열매

미선나무 꽃의 성별에 대한 인식도 잘못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미선나무는 개나리처럼 장주화와 단주화라는 개념의 꽃이 핍니다. 암수딴그루가 아닙니다. 이 또한 누차 말해온 것으로,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사실입니다.

장주화와 단주화는 암술의 길이에 따라 구분한 개념의 용어입니다. 암술이 수술보다 길면 장주화, 짧으면 단주화라고 합니다. 암술과 수술 모두 성적인 기능을 하고 열매를 맺으므로 암꽃 또는 수꽃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장주화와 단주화는 모두 양성화의 일종입니다. 그런데 간혹 장주화와 단주화의 꽃이 핀다고 소개하면서 암꽃과 수꽃의 역할을 한다고 설명하는 자료가 있습니다. 그건 분명한 오류입니다.

수꽃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 꽃이므로 절대 양성화가 아니며 단주화와 같은 것으로 볼 수 없습니다. 장주화와 단주화를 암꽃과 수꽃으로 인식하는 건 용어에 대한 개념이 부족한 데서 비롯된 오류입니다. 전문가들조차 그러니 일반인들은 얼마나 더 하겠습니까?

미선나무의 장주화(암술이 수술보다 길다)
미선나무의 단주화(암술이 수술보다 짧다)

새로운 자생지의 추가 발견도 좋지만 올바른 식물 지식의 교육이 그래서 중요합니다. 먹고 즐기면서 소비하는 대상이 아니라 연구하고 가르치면서 개발하는 대상으로 식물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름이 미선이인 사람을 찾아 행사에 동원하기보다 세계적으로 우리나라에 1속 1종밖에 없는 희귀식물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널리 알게 하는 교육이 더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미선나무와 관련된 잘못된 정보를 언제 다 수정할 수 있을지 인터넷 세상이 만들어낸 오류들 앞에 눈앞이 캄캄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