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들어 코스피지수가 연일 상승하면서 4일 2206.53으로 마감했다. 연초 이후 상승률로 따지면 8%에 달한다. 코스피 랠리는 외국인의 강한 매수세 덕분이었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연초 이후 주식 시장에서 6조원어치 한국 주식을 사들였다. 작년 한 해에만 6조3000억원어치 주식을 순매도했는데, 올해 다시 대부분 채워넣은 셈이다. 유가증권 시장에서 외국인의 상장주식 보유 비중은 4일 연중 최고치(37.2%)를 찍었다. 반면 개인·기관들은 같은 기간 국내 액티브 주식형 펀드에선 6000억원, 국내 주식은 5조원 넘게 처분하면서 발을 빼고 있다. 국내 기업들의 실적 둔화 우려가 큰 상황인데 외국인의 바이 코리아(Buy Korea)는 왜, 그리고 언제까지 계속될까.

◇외국인만 나 홀로 매수하는 한국 주식

지난해 한국 증시는 미·중 무역 분쟁, 미국 금리 인상, 세계 경기 둔화 등 여러 악재가 맞물리면서 외국인 자금 이탈에 시달렸다. 그런데 올해는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졌다. 김영환 KB증권 선임연구원은 "미국 중앙은행이 올해 기준금리 인상 방침을 종전 2회에서 0회로 하향 조정하는 등 비둘기파적인 태도로 돌아섰다"면서 "달러 강세 기조가 완화될 것이란 기대감 속에 글로벌 펀드 자금이 미국에서 빠져나와 통화 가치 하락이 컸던 신흥국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말했다. 글로벌 주식시장 내에서 자금 배분 일환으로 신흥 시장에 속하는 한국 시장으로 매수세가 몰렸다는 설명이다.

코스피 지수가 2206.53으로 마감한 4일 서울 중구 KEB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딜러가 업무를 보고 있다. 이날 유가증권 시장에서 외국인의 상장주식 보유 비중은 연중 최고치(37.2%)를 기록했다.

실제로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신흥국에는 외국인 자금이 몰려들고 있다. 4일 미래에셋대우에 따르면, 연초 이후 3월 말까지 한국·대만·인도·태국·인도네시아·필리핀 등 아시아 6개국 증시에 순유입된 금액은 145억달러(약 16조5000억원)에 달했다. 작년에만 350억달러어치 주식을 팔아치웠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중국 정부의 경기 부양책 효과로 양호한 경제 지표가 나오자, 중국 경제 호전에 베팅하는 글로벌 자금이 한국 증시로 몰리고 있다는 의견도 있다. 3일 발표된 3월 차이신 종합 구매관리자지수(PMI)는 52.9로 집계됐다. 전월치(50.7)를 대폭 웃돌았고, 지난해 6월 이후 9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PMI는 경기의 선행 지표로, 수치가 높을수록 경기가 좋다는 의미다. 이건규 르네상스운용 대표는 "중국 증시는 거래가 까다롭다 보니 유동성이 풍부하면서 쉽게 거래할 수 있는 한국 증시를 대용품(proxy)으로 활용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외인 자금 40%, 조세 회피처서 유입

코스피지수가 올 들어 8% 오르며 순항하고 있지만 '봄날이 왔다'면서 기뻐하는 개인 투자자들은 보기 힘들다. 심지어 펀드 수익률이 올라 즐거워야 할 여의도 펀드매니저들조차도 '이러다 말겠지'라며 냉담한 반응이다. 최근 주가 상승이 빅2(삼성전자·하이닉스) 종목에만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4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연초 이후 이날까지 삼성전자·SK하이닉스에 대한 외국인 순매수 금액은 4조2799억원에 달했다. 이는 같은 기간 유가증권 시장 전체 외국인 순매수 금액(5조4010억원)의 79%에 달한다. 외국인의 집중 매수로, 전기전자업종 지수는 올 들어 21% 오르며 코스피지수 상승률(8%)을 압도했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은 4일 "미국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가 전날 사상 최고치 부근까지 오르는 등 반도체 경기가 좋아질 것이란 전망이 강하다"면서 "무역 분쟁이 해결되면 전자 제품 수요가 늘어날 것이란 기대감도 크지만 올해 IT 업종의 영업이익 추정치가 하향 추세인 점을 고려하면 호재가 주가에 선반영됐을 수 있다"고 말했다. 올해 한국 증시에 들어온 외인 자금의 40%가 버진아일랜드·룩셈부르크·케이맨제도 등 주요 조세 회피처에서 왔다는 점도 우려를 더한다. 조세 회피처를 통해 들어오는 자금은 핫머니(단기 투자성 자금)로 평가받는다. 문다솔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장기 투자 위주인 미국계 자금과 달리, 조세 회피처 등에서 온 유럽계 자금은 작은 변수에도 예민하게 반응한다는 특징이 있다"고 말했다. 한국 상장사들의 실적 기대감이 낮아진 상황에서 유럽계 자금 비중이 높아진 만큼, 이들이 변심한다면 증시는 예전보다 더 심하게 흔들릴 수 있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