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서 담보 보증 약속에도 영업점은 매출 위주 심사

정부가 지난해 말 신용도 하락, 대출한도 초과 등으로 금융 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조선업 부품업체를 위해 각종 보증 지원 프로그램을 마련했지만, 실제 이 프로그램의 지원을 받은 업체는 소수에 불과한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는 수주 계약서만 있으면 보증기관의 도움을 받아 자금을 조달한 뒤 물품을 제작·납품할 수 있게 한다는 계획이지만, 보증기관이 여전히 신용도, 매출액 등을 위주로 심사를 하기 때문이다. 업체들은 "매출 악화로 겪는 어려움을 해소해 주겠다더니, 매출이 너무 나빠 지원을 못해준다니 기가 찰 따름"이라고 했다.

3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18일 부산시는 ‘조선기자재업체 금융지원 프로그램 문제점 및 대책 검토보고’ 보고서를 통해 "보증지원 심사시 신용도, 매출변동, 재무구조 등 심사기준을 중점으로 엄격하게 적용, 평가하다보니 기준에 미달돼 보증지원 불가 업체가 다수 발생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특별보증 수행기관인 신보, 기보, 한국무역보험공사에 심사 완화를 건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산업통상자원부, 중소벤처기업부, 금융위원회 등 정부는 지난해 11월 ‘조선산업 활력제고 방안’을 통해 1000억원 규모의 ‘조선사-기자재사 상생을 통한 제작금융 지원 프로그램’을 발표했다. 일감을 확보해 놓고도 자금을 조달하지 못해 실제 제작에 돌입하지 못하는 기자재 업체를 위해 신·기보가 2021년 말까지 각각 700억원, 300억원씩 보증을 제공하는 것이 골자다. 업체당 30억원 한도로 최대 90%까지 보증해주기로 했다.

정부가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조선업 기자재 업체를 대상으로 계약서 위주의 보증 프로그램을 마련했지만, 정작 현장에서는 낮은 신용도 등을 이유로 해당 프로그램을 활용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경남 거제에 위치한 한 조선업 협력업체 공장 모습.

그러나 현재까지 집행 실적은 저조하다. 3월 말 기준 신보는 7개 업체에 51억원, 기보는 6개 업체에 36억원 지원하는 데 그쳤다. 1000억원 중 87억원으로, 10%도 안되는 수준이다. 부산조선해양기자재공업협동조합 관계자는 "조선업이 오랜 시간 불황을 견디면서 신용도와 담보력, 매출 모두 낮아진 상태이다보니 정부 방침은 신규 발주를 수주했다는 계약서만 있으면 보증을 지원해주겠다는 것"이라며 "그러나 실제 업체들이 계약서를 들고 신보와 기보를 찾아가면 신용도나 재무구조 등 여러 요건이 맞지 않아 지원 대상이 안된다는 답변을 듣는다며 항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적시에 보증 지원이 이뤄지지 않으면 어렵게 따낸 신규 수주 물량을 놓칠 수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신규 물량을 수주하면 원자재를 미리 주문하고 하청 업체도 미리 발주를 넣어야 하는데, 최근 조선업황이 워낙 안좋다보니 선금을 입금해야 원자재와 하청 업체 발주가 가능하다"며 "최근 업황이 회복 기미를 보이고 있다고 하지만, 자금 조달이 제때 되지 않다보니 현장은 여전히 어려움에 빠져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기보 관계자는 "해당 지원 프로그램을 신청하는 업체들의 경우 이미 10억원, 20억원씩 보증을 받고 있는 곳이 많은 데다, 신용도도 워낙 낮아 기보 입장에선 보증을 쉽게 내주기엔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라며 "영업점은 전결권이 없다보니 보다 면밀한 심사가 필요한 업체들은 본사 보증심사위원회로 송부하는데, 위원회는 영업점보다 더욱 보수적으로 평가하기 떄문에 지원을 받지 못하는 업체들이 발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신보 관계자 역시 "일반 기업 심사보다 (조선업 심사 기준을) 많이 완화하긴 했지만, 조선업이 워낙 힘든 상황이다 보니 (지원 대상에) 부합하지 않은 경우가 많은 듯 하다"며 "조선사의 수주 물량이 최근 본격적으로 증가하는 만큼, 기자재의 납품 계약도 증가할테니 2분기 이후엔 보증 취급이 본격화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신·기보는 물론 업체들도 정책보증기관 영업점의 ‘전결권’을 완화해줄 것을 관계 부처에 요구하고 있다. 조합 관계자는 "각 영업점에서 1차적으로 신청을 받아 기본 자격을 심사하는데, 조금이라도 부실 리스크가 있으면 영업점은 향후 실적 평가에 반영되기 때문에 거절하거나 본사 심사위로 전달한다"며 "영업점이 보다 적극적으로 업체에 보증을 내어줄 수 있도록 전결권을 완화하고, 부실이 발생해도 고의가 없다면 담당 직원이 면책되도록 중기부와 금융위에 지속적으로 건의 중"이라고 말했다. 기보 관계자도 "전결권 하향 조정 방안에 대해 중기부와 협의 중"이라며 "올해 지원 목표인 250억원을 달성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