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의 대변인’ 역할을 했던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사면초가에 빠졌다. 과거 회비의 50%를 내던 4대 그룹이 탈퇴하면서 재정난에 허덕이고 있다.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의 공실률이 높아지면서 대출금 상환마저 어려워졌다.‘전경련 패싱(배제)’라는 신조어가 나올 정도로 현 정부가 철저히 외면하면서 대표적 경제단체라는 위상도 옛말이 돼 버렸다.

◇ 4대 그룹 탈퇴, 회비 수익 급감…빚내서 지은 회관은 공실률 20%

31일 전경련에 따르면 지난해 전경련의 전체 사업수익은 456억원으로 2017년(674억원)보다 32.3%가 줄었다. 삼성, 현대자동차, SK, LG 등 4대 그룹이 전경련을 탈퇴하기 전인 2016년(936억원)의 절반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전경련의 회비 수익은 2016년 408억원에서 2017년 113억원으로 줄어든데 이어, 지난해는 83억원으로 감소했다. 전경련이 600여 회원사로부터 걷는 회비(약 400억원) 중 절반이 4대 그룹 몫이었던 만큼 타격이 큰 상황이다.

서울 여의도 전경련 회관.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의 공실률은 20% 수준으로 여의도 사무실 평균 공실률(12%)보다 높다. 임대중인 40개층 중 절반을 사용했던 LG 계열사들이 서울 마곡으로 이사를 간 영향이다. 공실률이 높아지면서 임대료 수입도 급감하고 있다. 지난해 전경련의 임대료 수입은 225억원으로 2017년(354억원) 대비 36.4%가 줄었다. 전경련회관은 빚을 내 지은 건물이다. 임대료 수입이 줄면서 대출금 상환마저 불투명해졌다.

전경련이 인건비조차 마련하지 못하자 210명이었던 직원수(산하 한국경제연구원 포함)는 현재 80여명으로 줄었다. 전경련은 한때 한국무역협회와 함께 국내 경제단체 중 ‘신의 직장’으로 불리던 곳다. 4대 그룹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연봉·복지를 자랑했지만, 급여삭감·복리후생 폐지 등 고강도 쇄신으로 석·박사급 인력의 이탈이 이어졌다.

◇ 정부, 각종 행사에 철저히 배제…허창수 회장, 위상회복 과제

전경련은 과거 미르·K스포츠재단 기금 출연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현 정부에서 ‘적폐’ 취급을 받았다. 때문에 대통령 해외 순방 경제사절단, 청와대 신년회, 여당 주최 경제단체장 신년간담회 등에서 철저히 소외됐다. 올 1월 청와대에서 열린 기업인 간담회에 허창수 회장은 전경련 수장이 아니라 GS그룹 회장 자격으로 참석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최근 전경련 패싱이 해소될지는 묻는 질문에 "전경련과 소통할 필요성을 못 느낀다"고 했다. 재계 관계자는 "(전경련에 대한 인식 때문에) 국내 기업들이 전경련에 회비를 내는거조차 부담스러워하고 있다"고 말했다.

허창수 회장은 올 2월 전경련 위상 회복이라는 숙제를 안고 4연임을 결정했다.

허창수 회장은 전경련 위상 회복이라는 숙제를 안고 지난달 4연임을 결정했다. 하지만 2년 전 한국기업연합회’로 단체명을 바꾸는 등 개혁안을 발표했지만 아직까지 이렇다할 성과는 없는 상황이다.

허 회장은 연임 후 저성장 극복, 지속가능 성장, 일자리 창출, 산업경쟁력 강화, 남북경제협력 기반 조성 등 4대 계획을 밝혔다. 전경련은 이달 20일 3년 만에 대졸 공개 채용에 나서면서 싱크탱크 기능을 강화하고 인력보강에 신경을 쓰고 있다.

허 회장은 취임사에서 "전경련이 2017년 혁신안을 발표하고 새롭게 태어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지만, 아직 국민들이 보시기에 부족한 점이 있다"면서 "앞으로 국민들과 회원들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