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장기 금리와 단기 금리가 12년 만에 역전되면서 미국을 포함한 세계 경제가 경기 침체기에 접어드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터져 나오고 있다.

지난 22일(현지 시각) 뉴욕 채권시장에서 장중 한때 10년 만기 국채 금리가 연 2.428%까지 떨어지면서 3개월 만기 국채 금리(연 2.453%)를 밑돌았다. 장 마감 때 두 금리는 연 2.459%로 같아지기는 했지만, 장중 한때라도 10년 만기 국채 금리가 3개월 만기보다 낮았던 것은 2007년 이후 처음이다.

월가에선 장·단기 금리가 역전되면 경험 법칙으로 경기 침체에 돌입한다는 신호로 받아들인다. 장·단기 금리 역전 소식에 글로벌 증시는 하락세를 보였다. 이날 뉴욕증시에서 다우지수는 1.77% 떨어졌고,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지수는 2.5%나 하락했다.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유럽 증시도 2% 가까이 떨어졌다.

◇장·단기 금리차 역전…경기침체의 흉조(凶兆)인가

채권은 만기가 길수록 금리가 높은 게 정상이다. 장기로 돈을 빌릴수록 불확실성이 커지므로 단기보다 높은 금리를 제시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앞으로 경기가 급랭할 것으로 예상되면 미래에 자금 수요가 급격히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장기 금리가 단기 금리보다 더 떨어진다. 그래서 장·단기 금리가 뒤집히는 걸 경기 침체를 예고하는 신호로 받아들인다.

지난 22일(현지 시각) 뉴욕 증시에서 다우지수가 1.77% 하락하는 등 주가가 하락세를 보이자 뉴욕증권거래소에서 주식 거래인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주식 시세를 바라보고 있다. 이날 10년 만기 미국 국채 금리가 장중 한때 3년 만기 국채 금리보다 낮아지자 이를 미국 경기 침체의 전조(前兆)로 생각하는 투자자들이 대거 주식 매도에 나섰기 때문이다.

이는 미국에서 과거 경험으로 증명된다. 미국 듀크대 연구에 따르면 1960년대 이후 7번의 장·단기 금리 역전 현상이 벌어졌는데, 5~23개월 이후 예외 없이 경기 침체 국면에 들어선 바 있다. 가장 최근 장·단기 금리가 역전됐던 2007년은 글로벌 금융 위기가 터지기 바로 직전 해이기도 하다.

게다가 최근 미국 경기 흐름이 나빠진다는 신호도 계속 나오고 있다. 미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는 지난 20일 올해 성장률 전망을 기존 2.3%에서 2.1%로 낮췄다. 미국 성장률이 작년(2.9% 성장)보다 무려 0.8%포인트나 떨어진다는 것이다. 제임스 불러드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이날 장·단기 금리 역전 현상에 대해 "(장·단기 금리) 역전 현상이 수일 이상 지속될 경우 비관적인 신호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미실물경제협회(NABE)'가 지난달 회원 28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선 77%가 2021년까지 미국이 경기후퇴기에 진입할 것이라고 답변했다. 가장 많은 42%가 그 시점을 내년으로 예측한 반면, 10%는 일찌감치 올해부터 경기후퇴기에 접어들 것으로 예측했다. 미국 경기후퇴 우려에 국제통화기금(IMF)은 이달 올해 세계 성장률 전망을 기존 3.5%에서 3.3%로 낮추기도 했다.

◇"경기침체 속단하기 이르다"는 반론도

그러나 일각에선 미국 경기 침체 우려가 과장됐다는 반론도 제기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날 "미 연준의 행보가 장기 금리 하락을 부추긴 측면이 있다"고 평가했다. 미 연준은 지난 20일 올해 기준금리를 동결할 것을 시사했고, 시중에서 채권을 사들여 달러를 회수하는 양적 긴축 정책도 오는 9월 말로 조기 종료하겠다고 밝혔다. 이러한 연준의 움직임이 시장에 필요 이상으로 경기 침체에 대한 불안감을 조성했고, 장·단기 금리 역전을 불러왔다는 것이다.

또 아직 장·단기 금리 역전이 전반적이지 않다는 점도 반론의 근거다. 장·단기 금리 차이를 따질 때 월가에선 통상 2년물과 10년물을 기준으로 삼는데, 22일 2년물의 금리는 연 2.332%로 10년물보다 낮은 수준이었다. 마이클 클로허티 RBC 캐피털마켓 애널리스트는 "글로벌 경제가 작년처럼 빠르게 성장하긴 어렵겠지만 여전히 견고하며 경기침체를 우려할 만큼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한국은행 역시 당분간 기준금리 인하는 없을 것이라며 경기침체 가능성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최근 IMF가 "명백히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실시하라"고 권고한 것에 대해, 지난 21일 "지금의 통화정책 기조 역시 경제 심리를 제약하지 않는 완화적인 수준"이라며 "금리 인하는 아직 아니라고 보고 있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