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적 의료진 부족, 고령화에 따른 의료비 부담 증가가 맞물리면서 의료 서비스와 인공지능(AI)의 접목이 빨라지고 있다. 컨설팅 기업 액센추어는 "인공지능 기반 건강관리 세계시장 규모가 2014년 6억달러에서 2021년 66억달러에 이를 것"이라며 "전 세계적으로 고령화에 따른 의료비 부담으로 저렴하고 신속한 의료 서비스가 필요하기 때문에 각국이 AI와 헬스케어를 접목하는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고 했다.

방대한 헬스케어 자료량도 AI 기술 발달의 밑거름이 되고 있다. AI는 많은 데이터를 학습할수록 더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다. IBM에 따르면 사람 한 명이 일생 생산하는 의료 데이터는 1100테라바이트(TB·1024기가바이트) 정도다. 의료 기록은 물론이고 유전자 데이터나 스마트폰 앱에서 측정한 걸음 수 등 막대한 데이터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시장조사 업체 IDC는 내년 전 세계에 축적되는 의료 데이터가 2314엑사바이트(EB·10억7000기가바이트)에 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2015년의 15배가 넘는 수치다.

◇전 세계 오지의 의료 공백 메우는 AI

AI를 활용한 진단은 개발도상국의 의료 공백을 메우는 데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10일 알파벳(구글의 모회사)의 의료 기술 자회사인 '베릴리(Verily)'가 인도에서 AI를 당뇨병성 망막증 진단에 활용 중이라고 보도했다. 당뇨병성 망막증은 당뇨병 환자의 망막이 오랜 기간 고혈당에 노출되어 손상되는 병이다. 자각 증상이 없어서 조기 발견하기 어렵고, 심할 경우 시력을 잃게 된다. 당뇨병 환자는 전 세계 4억1500만명, 인도에만 약 7000만명에 달한다고 추산된다. 베릴리는 "인도의 안과 의사 수는 인구 100만명당 11명에 불과해 당뇨병 환자 대다수가 실명 위험이 있다"고 했다.

AI를 활용한 예비 진단은 매우 단순하고 빠르다. 안저(눈 뒤쪽) 촬영 이미지를 AI에 업로드하면 수초 만에 결과가 나온다. 의사가 아니더라도 숙련된 기술자라면 쉽게 안저 사진을 찍을 수 있다. 릴리 팽 구글 AI 프로덕트 매니저는 "인도·미국의 안과 의사 54명이 3~7회에 걸쳐 판독한 영상 12만8000건으로 AI를 학습시켰다"며 "이후 영상 9963건을 AI와 의사가 각각 판독한 결과, 정확도가 비슷하게 나타났다"고 밝혔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 빌 게이츠도 AI 기술을 접목한 헬스케어 서비스를 연구 중이다. 게이츠는 18일 한 강연에서 "아프리카에서는 대부분 사람이 태어나서 한 번도 의사 근처에도 못 가보고 죽는다"며 "(비용이 저렴한) 초음파 영상을 머신러닝으로 분석해 의학적 이해도를 높이는 시도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막대한 환자 데이터를 보유한 중국의 급성장

AI 와 헬스케어의 접목은 미국이 가장 앞선 것으로 평가받는다. 앞선 기술력에 인·허가 절차 간소화 등 정책 지원이 맞물려 신기술 등장과 상용화가 빨라지고 있다. 미국 FDA에서 승인받은 AI 의료 기술은 2017년 2건에서 지난해 12건으로 급증했다. '윈터라이트 랩스(Winterlight Labs)'는 사람 목소리를 분석해 관상 동맥 질환, 알츠하이머병, 수면 무호흡증 여부를 판단하는 기술을 개발 중이다. 이 회사의 CEO 리암 카우프만은 "2015~2016년에는 알츠하이머 병 예측 정확도가 82%였지만 지금은 93%"라며 "약 540가지 측정 기준을 살펴본다"고 했다. 아테리스(Arterys)의 AI 의료 영상 분석 시스템은 환자의 심장이 뛰는 모습을 입체(3D) 애니메이션으로 자동 작성한다.

최근에는 방대한 환자 데이터를 바탕으로 중국도 AI 기술 개발 속도를 높이고 있다. NYT는 "중국은 인구가 매우 많은 데다 개인 정보 보호 규제가 덜하다"며 "연구자가 막대한 데이터를 머신러닝 시스템에 입력해 AI의 능력을 높이기 좋은 환경"이라고 했다.

실제 중국 텐센트는 이미 2017년 의사 진료를 보조하는 AI '미잉 (miying)'을 출시했다. 식도암·폐암·자궁경부암·당뇨병 등을 진단하는 데 활용된다. 중국 스타트업 에어닥(Airdoc)은 망막 검사만으로 1초 안에 건강 상태를 알 수 있는 AI 기술을 선보였다. 망막의 혈관 변형, 얼룩, 변색 등을 토대로 당뇨병, 고혈압 등 수십 가지 만성 질병을 알아낸다. NYT는 "지난달 미·중 연구자들은 인플루엔자에서 수막염에 이르기까지 일반적인 유년기 건강 상태를 자동 진단하는 시스템을 만들었다고 발표했다"며 "연구진이 18개월 동안 소아과 병원을 방문한 중국인 환자 60만 명에 대한 기록으로 AI를 교육했다"고 했다.

국내에서는 지난해 5월에야 처음으로 AI 기술이 적용된 소프트웨어가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허가를 받았다. AI가 엑스레이 영상을 분석하여 환자의 뼈 나이를 제시하는 소프트웨어다. 의사가 환자의 왼쪽 손 엑스레이 영상을 참조표준영상(GP)과 비교해 뼈 나이를 판독하던 것에 비해 판독 시간을 줄였다는 평가다. 식약처는 "AI가 적용된 소프트웨어의 임상 시험 허가 건수가 2017년 3건에서 2018년 6건으로 늘었다"며 "분야도 전립선암 분석이나 유방암 진단 등 암을 진단하는 의료 기기로 다양해지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