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또다시 현실과 동떨어진 경기 인식을 보여주는 발언을 해 논란이 되고 있다. 문 대통령은 19일 청와대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올해 세계경제 전망이 어두운 가운데서도 우리 경제가 올해 여러 측면에서 개선된 모습을 보이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라면서 "국가 경제는 견실한 흐름을 유지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문 대통령은 "생산·소비·투자가 모두 증가했고 경제 심리 지표들도 나아졌다"며 "2월 취업자 수는 전년 동월 대비 26만3000명이 증가해 작년 1월 이후 가장 많이 늘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반짝 반등한 지표 몇 개만 가지고 경제가 좋아지고 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지적했다.

‘전역’ 앞둔 장관들과 대화 - 문재인 대통령이 19일 청와대 본관에서 퇴임을 앞둔 국무위원들과 이야기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문 대통령,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

①생산·소비·투자 늘었다?

문 대통령이 경제가 개선되고 있다는 근거로 든 지표는 통계청이 지난 2월 말 발표한 1월 산업 생산 동향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1월 생산과 소비는 전월 대비 각각 0.8%, 0.2% 늘었다. 하지만 국책연구원인 한국개발연구원(KDI)조차 계절적 요인에 따른 일시적 현상으로 판단한다. 지난해 2월 중순에 있었던 설 연휴가 올해는 2월 초로 당겨지면서 비롯된 착시라는 것이다. 1월 생산이 늘어난 것은 도·소매업과 운수·창고업의 증가 영향이 컸는데, 설 연휴를 앞두고 1월의 식재료 구입과 선물 배달 등이 증가한 덕분이라는 게 KDI 설명이다. 소비 증가도 KDI는 "설 명절이 당겨진 데 따른 일시적 현상으로 민간 소비 증가세는 미약하다"고 평가했다. 투자가 늘었다는 말도 현실과 거리가 멀다. 설비투자도 전달에 비하면 2.2% 증가했지만 작년 12월의 큰 폭 하락으로 인한 기저효과이며, 전년 동월 대비로는 16.6% 급감했다.

②고용 늘었다? 노인 단기 일자리만 늘어

문 대통령이 인용한 '취업자 수 26만3000명 증가'도 노인 공공 근로사업 조기 실시로 인한 일시적 현상이다. 통상 3월에 실시하던 노인 일자리 사업을 2월로 앞당기면서 60세 이상 취업자는 1년 전보다 39만7000명 늘었다. 그러나 30~40대 취업자는 24만명 이상 줄었고, 체감 실업률도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③경기 심리 여전히 바닥

경제 심리 지표들이 나아졌다는 발언도 현실과 괴리가 있다. 경제 심리 지표는 미·중 무역 분쟁 해결 기대감으로 2월 소폭 반등했지만 예년에 비하면 여전히 바닥권이다. 한국은행이 조사하는 기업경기실사지수(BSI) 중 제조업 업황지수는 2월 69로 1월 67보다는 올랐지만 장기 평균(79)을 크게 밑돌았다.

④나쁜 지표들은 못 본 체

일시적으로 반등한 몇몇 지표를 빼면 경기 부진 신호는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현재 경기 상황과 향후 경기 상황을 보여주는 경기동행지수 순환 변동치와 경기선행지수 순환 변동치는 각각 10개월, 8개월 연속 하락을 이어가고 있다. 이 지수들이 8개월 연속 동반 하락한 것은 1972년 3월 이후 처음이다. 수출도 비상이다. 수출은 지난해 12월부터 올 2월까지 3개월 연속 마이너스(-)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무디스 등 해외 기관들은 올해 한국의 성장률을 잇따라 하향 조정 중이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은 이런 핵심 지표들은 언급하지 않았다. "보고 싶은 통계만 본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부터 "최저임금 인상 긍정적 효과가 90%" "고용의 질이 좋아지고 있다" "자동차·조선 산업이 좋아지고 있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 한다" 등 일부 자료를 인용해 경제 현실과 동떨어진 주장을 반복해왔다.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대 교수는 "참모들이 입맛에 맞는 몇몇 통계만 골라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대통령이 그대로 옮기면서 사실과 다른 발언이 계속 나오는 것 같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