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오전 7시쯤 경기 화성시의 MG화성새마을금고 본점 앞. 아직 문을 열기 전이라 셔터가 내려져 있는데도 30여명이 본점 앞에 줄지어 서 있었다. 한 시민은 스티로폼 돗자리를 깔고 앉아 담요를 두르고 있었다. 캠핑용 간이 의자에 앉아 스마트폰을 보는 사람도 있었다. 누군가 "연예인을 기다리는 여고생 팬이 된 것 같다"고 농담하자 주위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날 시민들이 줄 선 이유는 '5.2% 금리' 때문이었다. 이 새마을금고는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지난 11일부터 연 최대 5.2% 금리(31개월 만기)를 주는 특판(特販) 정기적금을 내놨다. 가입자는 점포당 하루 선착순 31명. 요즘 같은 저금리 시대에 찾기 힘든 높은 금리에 끌린 서민들이 이른 새벽부터 줄을 선 것이다.

◇이자 한 푼 아쉬워… 특판에 몰린 서민

이날 '1번 타자'로 줄을 선 김모(55)씨는 "오전 4시 20분쯤 도착했다"고 했다. 김씨는 "요즘 같은 저금리 시대에 이렇게 금리가 후한 상품이 어디 있겠느냐"면서 "직장 다니는 딸에게 목돈 모을 통장을 만들어 주려고 왔다"고 했다. 오전 6시쯤 되자 31명 넘게 줄을 섰다고 한다. 예전에 순번 내에 못 들어 이날 다시 줄을 선 '특판 재수생'도 있었다. 박모(23)씨는 "저번에 오전 7시 30분쯤 왔다가 허탕쳐서 오늘은 일찌감치 왔다"고 했다.

오전 8시쯤 금고 직원들이 출근해 번호표를 나눠주자 희비가 엇갈렸다. 순번 안에 든 시민들은 환하게 웃었지만, 일부 시민은 아쉬운 표정으로 발길을 돌렸다. 경기 수원에서 온 장모(42)씨는 "5%가 넘는 금리는 15년 전에나 볼 수 있던 것이라 오전 5시쯤 일어나 서둘렀는데도 결국 늦었다"면서 "그래도 혹시 (앞에 줄 선 사람 중) 빠지는 사람이 있을까 기다렸지만 허탕 쳤다"고 했다.

경기 화성시 MG화성새마을금고 앞에 19일 이른 새벽부터 사람들이 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이 새마을금고는 최대 연 5.2%의 금리를 주는 적금을 특판 상품으로 내놓았는데, 조금이라도 높은 금리를 받으려는 고객들이 선착순으로 가입하기 위해 줄을 선 것이다.

줄 서서 기다린 사람들은 "요즘처럼 마땅한 투자처도 없고, 시중은행 금리도 낮을 때에는 이자 한 푼이 아쉽다"고 입을 모았다. 건설회사에 다니다 작년에 퇴직한 남모(63)씨는 최근까지 오피스텔 투자를 알아봤지만 부동산 경기가 안 좋아 결국 포기했다. 그는 "요즘은 안전한 게 최고 같다"면서 "5% 넘는 돈을 준다고 해서 부부 이름으로 모두 가입하려고 왔다"고 했다. 이날 아침 5시쯤 왔다는 임모(57)씨는 "매달 30만원씩 넣을 계획"이라면서 "조금이라도 좋은 조건에서 여윳돈을 굴리려는 게 당연하다"고 했다. 화성새마을금고 관계자는 "대대적으로 홍보한 것도 아닌데 생각보다 열기가 너무 뜨거워 당황스러운 상황"이라면서 "원래 지난 11일 출시해 한 달 동안 가입을 받으려고 했지만, 오는 22일 앞당겨 마감할 계획"이라고 했다.

◇새마을금고·신협 특판, 연이어 완판

최근 이렇게 후한 금리로 내놓는 특판 예·적금 상품은 출시되는 족족 완판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1월 기준 시중은행의 평균 정기 적금 금리(신규 취급액 기준)는 2.06%였다. 이보다 두 배 이상 높은 금리를 내건 특판 상품이 한 푼이라도 아쉬운 서민들을 사로잡는 것이다. 신협·새마을금고 등 상호금융조합에는 세금 우대 혜택이 있다는 점도 매력이다. 일반 시중은행 예·적금에 들면 이자의 15.4%를 이자소득세로 떼인다. 그러나 상호금융권 조합원(해당 지역에 살거나 직장을 다니는 경우 등)이면 연간 3000만원까지는 이자의 1.4%만 농어촌특별세로 낸다.

이런 매력 덕분에 각 지역 새마을금고·조합에서 특판을 따로 홍보하지 않아도 소문을 듣고 오는 고객이 끊이지 않는다. 보통 지역 조합원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거나 건물 외벽에 현수막을 걸어 놓는 정도인데도 줄지어 찾아온다는 것이다. 인터넷 카페나 블로그에서 '좋은 특판 떴다'는 글이 올라오는 식으로도 소문이 퍼진다.

지난달 서울 서대문구 신촌새마을금고가 하루 100명 선착순으로 판 연 최대 4.4%짜리 정기적금은 고객들이 새벽부터 줄 서는 등 화제를 모으면서 순식간에 마감됐다. 신촌새마을금고 관계자는 "가입 신청 마지막 날인 지난달 27일에는 새벽 2시부터 줄을 선 손님도 있었다"고 했다. 서울 강남구의 남서울신협은 지난 4일 최대 4.4% 금리의 특판 적금을 출시한 지 10영업일 만에 200억원에 가까운 불입금이 모이면서 15일 조기 마감했다. 이대식 남서울신협 고속터미널역 지점장은 "예상보다 반응이 뜨거워서 우리도 놀랐다"고 했다.

◇특판 인기 이어질 듯

전문가들은 경기 둔화 우려로 주가가 요동치는 데다, 부동산 경기 역시 하락세로 돌아서면서 안전 자산을 선호하는 흐름이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이재철 KEB하나은행 클럽1 PB센터장은 "요즘처럼 시장 변동성이 큰 상황에서 위험에 노출되길 꺼리는 서민들을 중심으로 적금 등 안전 자산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면서 "시장금리가 조금씩 올라가면서 고금리 적금 경쟁도 치열해질 것"이라고 했다. 상호금융조합의 고금리 특판 상품 역시 꾸준히 나올 전망이다. 예·적금 금리가 높은 탓에 '역마진' 우려도 있지만 시중은행보다 인지도가 밀리는 입장에서 괜찮은 특판을 내는 것만큼 효과적인 홍보 수단이 없다는 것이다. 새마을금고중앙회 관계자는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영업하는 상호금융조합 입장에선 소문만큼 중요한 게 없다"면서 "높은 금리를 주더라도 인지도 제고 효과가 충분하다면 밑지는 장사가 아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