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銀 노사, L0 직군 경력 어디까지 인정할지 놓고 갈등
고등법원 "퇴직금 산정시 정규직 전 근속기간도 포함해야"

KB국민은행의 창구전담직원 직급인 ‘엘 제로(L0)’ 퇴직자들이 정규직 전환 전 경력을 인정받지 못해 퇴직소득세를 과도하게 냈다고 각 주소지 관할 세무서를 상대로 한 소송에서 승소했다.

국민은행의 L0직군은 2014년 노동조합의 요구로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된 직급이다. 현재 국민은행과 국민은행 노동조합은 L0직군의 정규직 전환 전 경력을 어디까지 인정하느냐를 놓고 갈등을 빚고 있는데, 이번 판결이 확정되면 노사 갈등에서 노조 측에 힘이 실릴 전망이다.

19일 국민은행에 따르면 2015년에 퇴직한 국민은행 L0 퇴직자 20여명이 고등법원에 제기한 경정청구 소송에서 7일 승소했다. 경정청구란 납세 의무자가 과다납부한 세액을 바로잡을 것을 요청하는 행위를 뜻한다.

국민은행 노조가 총파업을 했던 올 1월 8일 서울 시내의 한 지점 모습.

L0 퇴직자들은 국민은행이 정규직 전환 전 경력을 인정하지 않아 퇴직금을 받을 때 내야하는 퇴직소득세를 과다하게 냈다고 주장했다. 퇴직소득세는 퇴직금에서 정률공제액(40%)을 빼고, 근속연수에 따른 공제액을 차감해 나오는 금액(과세표준액)을 토대로 계산된다.

예를 들어 근속연수가 10년인 근로자의 퇴직금이 5000만원이라고 하면 이 중 2000만원(40%)을 제외한 3000만원에서 근속연수 공제를 또 뺀다. 근속연수 공제액은 산식에 따라 400만원으로 계산되기 때문에 과세표준액이 2600만원이 되는 셈이다.

그런데 국민은행 L0 퇴직자들은 20년을 근무했다고 해도 신분이 정규직으로 바뀌었다는 이유만으로 근속연수가 짧아졌다. 당시 국민은행과 노동조합은 최대 근속 기간의 25%, 최대 60개월만 인정해주는 것으로 합의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국민은행에 22년 근속한 L0 근로자의 근속년수는 5년으로 인정됐다. 이를 토대로 근속연수 공제를 받으면 150만원만 공제받을 수 있다. 만약 비정규직으로 일한 모든 근속연수를 인정받았다고 하면 1440만원을 공제받을 수 있다.

근속연수 공제표

국민은행 L0 퇴직자들은 "KB국민은행이 이를 사전에 알고도 퇴직소득세율 과정에서 전환 전 근속경력을 제외해 과도한 퇴직소득세를 원천징수했다"고 했다. 이에 고등법원은 판결문에서 "L0 전환 전후의 업무내용이 사실상 동일하므로 퇴직소득세율 계산에서 근속기간은 전환 전 사무직원 근무경력을 포함해 산정해야 한다"고 했다.

노조 측은 고등법원도 L0직급의 정규직 전환 전 경력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린 만큼 은행이 L0 직급의 정규직 전환 전 경력을 최대 25%, 60개월만 인정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KB국민은행 노조는 최근 국가인권위원회에 L0의 정규직 전환 전 근무경력까지 인정해 급여·복지를 맞춰달라고 사측을 인권위에 제소한 상황이다.

만약 각 주소지 관할 세무서가 대법원에 상고하지 않으면 이대로 결과는 확정된다. 업계에서는 국민은행이 대법원에서 고등법원의 판결 내용이 인용되면 L0 근무경력 인정을 둘러싼 노조 측과의 갈등에서 불리한 위치에 서게될 것으로 보고 있다.

KB국민은행 노조 관계자는 "10년차 이상 근로자를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실시하면서 근속연수를 최대 5년만 부여한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행동"이라고 했다. 다만 근속연수를 최대 5년만 인정한다는 부분은 비정규직이었던 L0직급을 정규직으로 전환할 때 노사가 합의한 부분인만큼, 이제와서 노조가 말을 바꾸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KB국민은행 소속 행원은 "당시 노사가 적정선을 합의해 정규직 전환이라는 큰 결정을 내렸는데, 이제와서 합의 조건을 부정하는 것은 불필요한 갈등만 조장하는 일이라고 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