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지필름은 광학 산업에서 축적한 기술을 활용해 기업의 체질을 바꾸는 데 성공한 대표 사례다. 필름은 렌즈를 통해 들어온 빛을 모아 영상을 재현하는데 이때 수백 가지 화학물질을 정교하게 다루는 기술이 중요하다. 1990년대까지 세계 필름 카메라 업계 선두 주자였던 후지필름은 2000년대 중반에 필름 제조에서 파생한 화학 가공 기술로 화장품 회사로 탈바꿈해 대성공을 거뒀다. 빛과 연관된 산업의 엄청난 확장성을 제대로 이용한 것이다.

후지필름 도쿄 본사에서 한 소비자가 이 기업의 피부 재생 화장품 '아스타리프트'를 살펴보고 있다.

후지필름은 디지털카메라·스마트폰 등장으로 과거 주력이었던 필름 시장이 아예 사라졌지만 2017년 회계연도(2017년 4월~2018년 3월)에서 사상 최대 실적을 냈다. 매출 2조6000억엔(약 26조3800억원)과 영업이익 2300억엔으로, 세계 필름 시장이 최고 호황을 누렸던 2000년 실적의 두 배가 넘는다.

후지필름의 성공 비결은 필름 제조와 가공 기술에 있다. 이 회사는 필름에 들어가는 콜라겐을 가공하는 기술을 활용해 피부 재생 화장품 '아스타리프트'를 내놓았다. 빛을 다루는 민감함에 집착한 기술력이 고스란히 피부에 녹아들어간 것이다. 사진 변색 방지를 위해 개발했던 항(抗)산화 성분도 노화 방지 의약품과 화장품에서 진가를 드러내고 있다. 직경 1㎜의 초소형 내시경 렌즈, 레이저 프린터 기술을 활용해 세계 최초로 블루 레이저 내시경도 내놓았다.

미래 사업도 필름 물질에서 발굴하고 있다. 인공 피부, 인공 무릎 연골에 들어가는 콜라겐을 인공적 합성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는 것이다. 후지필름의 사내 혁신 센터인 오픈이노베이션허브의 겐지 코지마 관장은 "후지필름의 진짜 경쟁력은 필름을 만들 때 들어가는 100여 가지 화학물질을 생산·가공하는 원천 기술"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