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카메라 시장은 지난 7년 동안 끝없이 추락했다. 연 판매량은 2010년만 해도 1억2100여만 대였지만, 지금은 5분의 1 수준인 2500여만 대에 불과하다. 이 정도면 주요 기업은 줄줄이 도산하는 게 상식이다. 하지만 일본 4인방(캐논·니콘·올림푸스·소니 광학 부품 부문)은 이 기간에 매출이 10조원가량 뛰었다. 100년 넘게 축적한 광학(光學) 기술이 의료 내시경, 반도체 제조장비, 이미지 센서의 핵심 기술로 재(再)탄생했기 때문이다. 일본 광학 기업은 수조원대 연구개발(R&D)비를 쓰며 미래 시장으로 도약하고 있다.

광학의 미래 시장은 '사람의 몸'이다. 니콘이 올 1월 줄기세포 추출 기술 분야에 뛰어든 게 대표적인 사례다. 줄기세포 시장 규모는 현재 7조원 안팎이지만 2025년 400조원대로 커진다. 핵심 경쟁은 누가 더 싼 가격에 좋은 줄기세포를 생산하느냐다. 지금은 인간 골수나 수정란에서 얻다 보니, 1g당 수천만원이다. 니콘은 극히 미량만 존재해 사실상 불가능이라고 여겼던 치아에서 줄기세포를 뽑겠다고 하고 있다. 나노미터(1나노는 10억분의 1) 단위까지 구분하는 광학 기술이 불가능의 문을 여는 열쇠다. 머리카락 굵기의 10만분의 1까지 들여다보면서 양질의 줄기세포를 추출하는 것이다. 니콘은 알츠하이머·뇌졸중·당뇨·심장 질환 등 중증 질환 치료제 시장을 한꺼번에 움켜쥐려 하고 있다.

올림푸스는 이달 8일 '엔도 브레인'이라는 인공지능(AI) 내시경을 발표했다. 이 내시경은 대장 안에 들어가 스스로 암 발병 여부를 판단한다. 진단 정확도는 98%다. 10년 차 이상 숙련된 전문의와 맞먹는 수준이다. 이 회사는 불임(不妊) 부부를 위한 '정자 선별 AI 현미경'도 개발 중이다. 세포까지 하나씩 확대해 보는 초정밀 렌즈 기술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캐논은 CT(컴퓨터 단층촬영)와 MRI (자기 공명 영상) 등 의료 기기 시장의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캐논은 지난해 1월 도시바의 의료 기기 사업부를 6조5000억원에 인수했다. 김창경 한양대 과학기술정책학과 교수는 "나노 단위까지 빛으로 촬영하고 선명한 화면으로 보는 기술은 사실상 일본 광학 기업만 갖고 있다"며 "100년간 렌즈 분야에서 기술을 축적한 일본 시니세(老鋪·노포) 테크놀로지가 미래 시장을 하나씩 점령하기 시작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