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발표된 전국 공동주택 공시가격(이하 잠정치)은 '소수의 강남 고가(高價)주택만 정밀 타격할 것'이라는 취지의 정부·여당 주장과는 많이 달랐다. 비(非)강남 중산층 아파트에서도 두 자릿수 상승률이 쏟아졌다.

14일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에서 내려다본 서울 도심에 아파트와 공동주택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올해 전국 공동주택의 8.9%인 118만 채의 공시가격이 15% 이상 올랐다.

국토교통부는 이날 "시세 12억원 초과 고가 공동주택을 중심으로 공시가격 형평성을 제고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서울 노원구 중계동 청구3차 전용면적 84㎡ 한 채를 가진 회사원 A씨는 "정부 발표를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A씨 아파트 시세는 8억원대로, 정부 표현으로는 '공시가격 상승률이 높지 않은 중·저가 공동주택'에 해당하지만 이번에 공시가격이 22% 올라 보유세 부담은 32% 늘게 된다. 이런 식으로 전국 공동주택 1330만 채 가운데 8.8%(118만채)가 공시가격 인상률 '15% 이상' 구간에 포함했다.

시세 6억원부터 인상률 15%대

국토부는 시세 12억원 초과 아파트만 공시가격을 많이 올린 것처럼 설명했지만 발표 자료에 따르면 공시가격 급등 기준점은 6억원이다.

3억~6억원 구간의 평균 상승률은 5.6%였고, 6억원을 넘어선 공동주택은 모두 공시가격이 15% 이상 올랐다. '6억~9억원' 구간은 15.1%, '9억~12억원'은 17.6%, '12억~15억원'은 18.2%, '15억~30억원'은 15.6%, '30억원 이상'은 13.3% 등이다.

공시가격 6억원이 넘는 공동주택은 서울 아파트 반이 넘는다. 한국감정원이 집계한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은 지난달 기준 7억8000만원. 가격 순서로 줄 세웠을 때 정중앙에 위치하는 아파트 가격이 공시가격 15.1% 인상 구간에 포함돼 있는 것이다. 권대중 한국부동산학회장은 "서울에서 아파트 평균 가격보다도 1억원이나 싼 아파트 한 채를 가진 사람도 공시가격이 평균 15% 오른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예컨대 호가(呼價)가 6억3000만원대인 마포구 성산시영 전용면적 50㎡도 공시가격이 20.2% 오른다.

이런데도 국토부는 이날 발표에서 '상위 2.1% 고가주택 보유자 외에는 공시가격이 많이 오르지 않았다'는 주장을 여러 번 폈다. 시세 12억원이 넘는 고가 주택 28만채 외에 전체 주택 97.9%는 공시가격 상승률이 '높지 않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국토부 관계자는 "전체 공동주택의 97.9%에 해당하는 중저가 주택은 실제 가격이 오른 것보다 공시가격을 덜 올렸다"고 말했다. 쉽게 말해, 시세가 오른 만큼 공시가격을 그대로 올렸다면 공시가격은 훨씬 더 올랐을 것이라는 논리다.

"정부가 편 가르기 의도 아닌가"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이번 정책에도 하위 몇 %는 큰 영향 없다'는 식의 주장을 펴는 것은 정부가 소수 부자와 나머지 국민을 편 가르기 하려는 의도로, 조세 형평성 차원에서 바람직하지 않을뿐더러 사실과도 다르다"고 말했다. 세금을 올릴 때 대상자의 2%에 대해서만 올리고 나머지는 문제없다는 식의 정부 설명 자체가 문제라는 얘기다.

국토부는 작년 8월 국회에서 여당 측이 공시가격 인상을 통한 보유세 강화를 요구하자, 실제 가격상승률을 공시가격에도 한 번에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말 자체는 맞아 보이지만 그동안 정부는 집값이 단기 급등하더라도 이를 공시가격에 반영할 때는 2~3년에 걸쳐 천천히 반영해왔다.

전 국토부 고위 관료는 "소유자의 조세 부담이 한 번에 크게 늘어나지 않도록 배려하는 동시에 부동산은 단기적으로 출렁일 수 있는 특성이 있어 시세가 제대로 자리를 잡을 때까지 지켜보자는 의미였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이번엔 한꺼번에 시세 상승분을 반영했다.

고준석 동국대 겸임교수는 "작년 말부터 서울에서도 집값 하락세가 이어지고 있어, 오는 7월과 9월 재산세를 낼 시점엔 그동안 집값 상승분을 상당 부분 반납한 단지도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