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그룹 계열사 현대아산이 이번달 6년 만에 실시한 500억원 규모 유상증자 청약에 현대건설, KB증권(옛 현대증권), 현대백화점, 현대차 등 범현대가 주주들이 참여하지 않았다. 현대그룹과 관계가 껄끄러운 범현대가 주주들은 계열 분리 이후 현대아산이 실시한 6차례의 유상증자에 단 한 번도 참여하지 않게 됐다.

현대아산은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1999년 설립한 ‘㈜아산(현 현대아산)’으로 출발했다. 대북사업을 맡은 현대아산에는 현대상선, 현대건설, 현대중공업, 현대자동차, 현대증권, 현대백화점, 현대종합상사 등 당시 그룹 주력 계열사 대부분이 참여해 자금을 지원했다. 그러나 정 명예회장 별세 이후 계열 분리한 현대자동차그룹과 현대중공업그룹은 현대그룹과 거리를 두고 있다. 현대중공업그룹은 현대아산 지분을 모두 정리했고, 현대차그룹은 현대아산이 수차례 진행한 유상증자에 참여하지 않았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지난해 북한 금강산에서 금강산관광 20주년 기념연회 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질문을 듣고 있다.

◇ 범현대가 불참 예견된 상황…계열 분리 이후 줄곧 외면

15일 현대아산은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진행한 결과, 414억원에 대한 청약이 이뤄졌다고 밝혔다. 최대주주인 현대엘리베이터와 특수관계인 지분 75.17%와 소액주주 등을 합쳐 82.83%에 대한 청약이 이뤄졌다. 현대아산은 지난해 12월 회사 운영자금(150억원)과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재가동을 위한 시설자금(350억원) 확보를 위해 5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결정했다.

현대아산 지분 70.16%를 보유하고 있는 최대주주 현대엘리베이터는 지난달 27일 356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결정했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4.04%), 정지이 현대무벡스 전무(0.51%) 등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최대주주 특수관계인 등도 유상증자에 참여했다.

당초 유상증자 참여에 관심을 모았던 현대건설(지분 7.46%), KB증권(4.98%), 현대자동차(1.88%), 현대백화점(1.09%) 등 주요 주주들은 유상증자 참여 명단에서 빠졌다.

현대아산은 당초 목표로 제시했던 500억원은 달성하지 못했지만, 현대건설 등 주요 주주의 불참을 어느 정도 예상했다는 반응이다. 현대아산 2대 주주인 현대건설을 포함한 범현대가 계열사들은 한 번도 현대아산 유상증자에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를 수 있다는 기대감도 있었다. 최근 남북 화해 모드로 남북 경협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면서 대북 사업 참여 의지가 있는 기업들은 현대아산에 투자를 고려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비상장사인 현대아산 주식은 장외시장(K-OTC)에서 한때 1주당 6만원에 거래되기도 했는데, 이는 현재 주가의 두배 수준이다.

재계에서는 범현대가 계열사들이 2차 미북 정상회담이 별다른 성과 없이 끝난데다 돌연 입장을 바꿔 투자에 나서는 것을 부담스러워 했다고 보고 있다.

서울 종로구 현대아산 본사 사옥 입구.

◇ 금강산‧개성관광 투자금 금융기관에 예치…남북 경협 안 풀리면 운영자금으로

현대그룹측은 범현대가 계열사 참여 없이도 현대아산 유상증자가 충분히 흥행한 것으로 보고 있다. 2차 미북 정상회담이 성과를 내지 못한 상황에서도 지분 7.1% 규모의 소액주주들이 대거 참여했다. 남북 경협이 짧은 시간 안에 이뤄지기 어렵더라도 한번 물꼬가 트이면 대북 사업에 전문성을 가진 현대아산의 역할이 부각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아산은 당초 운영자금 150억원, 시설자금 350억원 등 500억원 규모의 자금 사용 계획을 세웠다. 계획보다 적은 자금을 조달했지만 금강산·개성공단 시설 개보수와 비품구입을 위해 쓰기로 한 350억원은 그대로 유지하고, 운영자금을 64억원으로 줄였다. 하지만 현재 대북사업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 시설자금은 당분간 금융기관에 예치할 것으로 보인다. 올 4분기까지 대북사업이 재개되지 않으면 운영자금으로 활용할 예정이다.

재계 관계자는 "범현대가 현대아산 유상증자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예측 가능했던 사안이지만, 남북경협을 위한 관계 개선이나 투자 관점에서 보면 아쉬운 선택"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