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다른 도시에서 출발해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서울행 비행기로 갈아타기까지 약 6시간이 남았다. 멀리 다녀올 수도 없고, 그냥 쉬고 있기에도 애매한 시간이다. 남녀 혼탕 사우나에나 가볼까?

독일에서나 체험할 수 있는 이국적인 관습에 많은 이들이 호기심을 갖고 가지만 그것도 잠시뿐이다. 약 30분의 시간이 지나면 심드렁해진다. 터부, 혹은 금기란 그런 것이어서 빗장을 여는 순간 힘을 잃고 마는 것이니까.

철교인 아이젤너 슈텍에서 마인강가를 끼고 박물관 거리를 따라 걷다 보면 그림 같은 풍경을 종종 만난다.

자칫 허공에 날릴 수도 있는 그 애매한 시간을 완벽히 나의 시간으로 만드는 좋은 방법은 없을까? 독일에 왔다면 일단 공원 산책이다. 오랫동안 사무실에 갇혀있는 리더들에게는 신선한 공기가 무엇보다 필요할 테니까. 다행히 프랑크푸르트는 도심에도 녹지가 풍성하다. 이 도시를 발바닥으로 만나는 최선의 방법은 마인 강가를 따라 걷는 것이다.

우선 유서 깊은 보행자 전용철교인 아이젤너 슈텍(Eiserner Steg)에서 도시 전체를 조감한 뒤, 길 건너 강변을 따라 박물관 거리를 따라 걷는다. 밑에는 물이 흐르고 위에는 푸른 녹지와 오래된 건축물들, 그리고 예술이 있다.

[[미니정보] 프랑크푸르트市]

프랑크푸르트를 대표하는 슈테델 박물관까지 따라가는 약 1.5km는 환상적인 산책 코스다. 시간과 열정이 허락한다면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 상징 그림이 걸려있는 멋진 슈테델 박물관에 들어가 관람하는 것도 권할만하다.

구시가지에서 바라본 마인강과 슈테델 박물관. 사진 오른쪽 다리는 보행자 전용인 홀바인 슈텍.

이제 슈테델 박물관 앞의 보행자 전용 다리인 홀바인 슈텍을 건너 구 도심 지역으로 들어간다. 약 10여분 걷다 보면 빌리 브란트 광장과 이어서 유럽연합의 화폐인 유로를 기념하는 대형 조각물을 만나게 된다.

독일의 정치적 수도는 분명 베를린이지만 경제적 수도는 프랑크푸르트다. 이곳에 유럽연합의 중앙은행이 있으니 유럽의 경제 수도 역할도 떠맡고 있는 셈이다.

프랑크푸르트에는 유로중앙은행이 있다. 빌리 브란트 광장에 서있는 유로 기념조형물.

이제 ‘자일’(Zeil)이라 부르는 프랑크푸르트 제일 번화가에 들어갈 차례다. 명품 상점들이 줄이어 있으니 이곳의 유행과 트렌드 흐름을 가볍게 살펴보는데 어디선가 구수한 냄새가 풍겨온다. 소시지를 굽는 냄새, 여기에 파슬리와 페이지 같은 이국적인 향료 내음도 섞여오는 것 같다.

전통시장이 선 것이다. 유럽을 대표하는 현대식 금융도시, 그리고 상업도시이긴 하지만 프랑크푸르트는 여전히 전통시장이 선다. 지역마다 다른 방식으로 옛 시장을 지켜오고 있는데, 도심 한복판 쉴러 거리 입구에는 매주 금요일마다 장이 열린다는 간판이 서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가장 번화가인 자일 지역에 금요일마다 시장이 선다는 표지판(사진 위). 이런 작은 전통시장은 출장자에게 눈요기와 점심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요긴한 곳.

시장 구경은 언제나 즐겁다. 규모는 그리 크지 않은 간이 시장이지만, 시간에 쫓기는 출장자에게는 오히려 집중할 수 있어 좋다. 채소와 과일, 달걀과 치즈, 육류 등 모두 근방에서 생산되는 로컬 식재료를 판다. 로컬 푸드와 유기농이 요즘 대세라는 것을 이곳에서도 확인하게 된다.

걷다 보면 허기가 진다. 프랑크푸르트의 직장인들처럼 이곳에서 가볍게 요기해보는 것도 좋다. 구운 소시지 한 개에 겨자 혹은 케첩 소스를 발라서 둥근 빵 사이에 끼워먹는 것으로 간단히 해결하는 직장인들의 모습 속에서 매우 검소한 독일식 실용주의를 목격하게 된다. .

전통시장에서 간단히 점심을 해결하는 프랑크푸르트 직장인들. 독일의 실용주의를 관찰하게 된다.

시장구경과 요기를 했으면 이제는 정신적 공복감을 해결할 차례. 호기심 강한 리더라면 출장지에서 서점 혹은 도서관에 한번씩은 들리기 마련이다. 지식 정보계의 흐름을 눈요기하는 즐거움도 있고, 또 새로운 컨셉과 아이디어, 디자인을 관찰하는 재미도 있다.

프랑크푸르트에는 이 도시의 명물인 후겐두벨 서점이 기다리고 있다. 후겐두벨은 뮌헨에 본사를 둔 독일 최대 서점 체인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프랑크푸르트 시내에 있는 서점 이름은 ‘후겐두벨 암 슈타인벡’(주소: Steinweg 12)이다. 전통시장에서 걸어서 불과 1~2분 거리다.

프랑크푸르트의 명물서점 후겐두벨 암슈타인벡의 외부전경.

얼핏 평범해 보이는 외형만보고 선입견을 가져서는 곤란하다. 이곳은 오랫동안 프랑크푸르트 주재원들의 마음의 양식, 그리고 출장자들에게는 영혼의 오아시스 역할을 해왔으니까. 나선형으로 설계된 실내 디자인이 핵심이다.

한국식으로 하면 5층으로 이뤄진 이 서점은 천정을 투명하게 하였을 뿐 아니라 가운데를 통으로 빈 공간으로 만들어 자연 채광이 지하까지 전달된다. 책 읽기에 최적화된 디자인이다. 책을 사건 그렇지 않건 간에 독자들은 편안한 소파에서 개인 독서등을 이용하며 마음껏 책을 볼 수 있다.

천정을 투명하게 하여 지하의 구내 카페까지 자연채광이 전달되도록 하였고 나선형 방식의 실내 디자인이 특징이다.

해리포터 이름을 이용하여 5유로를 받고 입장시키는 포르투의 렐루 서점의 운영방식이나 철학은 이곳에서는 상상하기 힘들다. 물론 거대한 디지털 물결과 전자상거래의 폭풍 앞에서 독일의 많은 서점들도 문을 닫았다.

하지만 아무리 시대가 변했다고 해도 도서관과 서점은 그 자체로 지켜야 할 우아함과 품격이 있다. 매년 세계최고 서적박람회가 프랑크푸르트에서 개최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인문학적 축적과 관용의 힘 덕분일 것이다.

사진 오른쪽의 붉은 색 부분이 마음껏 책을 볼 수 있도록 개인 독서등이 겸비된 소파 공간이다.

마침 올해 바우하우스100주년이어서 서가 한쪽엔 완전 바우하우스 특집이다. 책뿐 아니라 다양한 문구류와 캐릭터 상품도 비치되어 있다. 독일어 서적이 주류를 이루고 있지만, 글로벌 도시답게 영어로 된 책들도 적지 않게 눈에 뜨인다.

바우하우스 100주년을 기념한 특집 서가가 마련되어 있다.

이제 공항으로 갈 시간. 하우푸트바헤(Hauptwache) 역에서 공항으로 가는 도심 급행열차가 기다리고 있다. 불과 30분 정도면 프랑크푸르트 국제공항까지 닿는다. 정신적 공복감과 육체의 허기를 동시에 해결했고 게다가 발바닥의 자극도 충분히 했다.

항공기에 탑승해 가볍게 맥주 한잔하면 깊은 잠 속으로 빠지리라. 시간이 황금보다 더 귀한 해외 출장자에게 이보다 더 완벽한 반 나절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