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대제 스카이레이크인베스트먼트 회장

"기업은 기존 틀에서 벗어나 통섭(統攝) 전략을 짜야 하고 정부는 산업계의 플랫폼 작업을 지원해야 합니다. 한국이 전략적으로 키워야 할 미래 산업은 자율주행차와 드론처럼 기존 전통산업의 노하우와 최신 정보통신·센서·가상현실·빅데이터 기술이 융합된 산업입니다."

정보통신부 장관을 역임한 진대제 스카이레이크인베스트먼트 회장은 "기업의 미래 혁신 전략으로 '서비스화' '플랫폼화'를 추진해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제조업에 유통·금융 서비스를 접목한다든가, 자동차와 철강 산업을 융합해 자동차 부품 플랫폼을 만드는 식의 구조 혁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미래 산업 육성을 위해 피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라는 점도 강조했다. 자율주행차, 인공지능(AI) 등 4차 산업혁명 분야에서 한국이 미국, 중국 등 경쟁국에 3~5년 뒤처지고 있다는 것이다.

진 회장은 "과거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 수준의 초고속 인터넷 구축, 세계 최초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기술 상용화, 디지털 방송 전환 등 혁신 산업을 주도했는데, 지금은 이런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다"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국가 차원의 산업 혁신, 기술 고도화 전략이 안 보인다고도 했다. 경제가 성장하려면 미래 기술에 투자하고 기술자와 기업이 신바람 나게 일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하는데, 지금은 반대로 가고 있다는 것이다.

진 회장은 "현 정부가 소득 주도 성장을 앞세워 최저 임금을 올리고, 52시간 근무제를 시행했다"면서 "국민 중 일부는 분명히 혜택을 보겠지만, 그 효과는 오래가지 않고, 자칫하면 국가 경제가 멍들 수 있다."고 말했다.

진 회장은 약 20년 삼성전자에서 일하며 국내 반도체 산업 성장에 기여한 기술·혁신 전문가다. 노무현 정부에서 정보통신부(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을 지냈고, 퇴임 후에는 스카이레이크인베스트먼트를 설립해 기업에 투자하고 있다. 지난해 11월부터는 서울시 혁신성장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정책 혁신에도 앞장서고 있다.

―기업이 혁신을 위해 할 일은.

"제조업이 서비스와 결합하는 '제조업의 서비스화'가 필요하다. GE, 롤스로이스 같은 회사는 비행기 엔진을 만들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리스사업도 한다. 아디다스는 신발을 만들면서 온라인 유통도 강화하고 있다. 제조사가 제품과 금융 서비스, 제품과 유통 서비스를 겸하는 형태다. 특정 사업에 국한하지 말고 분야를 넓혀 플랫폼을 구축해야 한다. 개별 회사가 그렇게 하긴 쉽지 않다. 정부가 기업의 플랫폼화를 도와줘야 한다. 예를 들면 자동차와 철강을 합쳐서 효율성과 경쟁력을 높이는 방법이 있다. 이렇게 하면 한국 기업이 글로벌 자동차 부품 표준화에 성공해 수출을 확대할 수도 있다. 산업구조를 바꾸는 정책이 필요한데 현재 정부가 하지 않고 있어 문제다."

―미래 혁신을 위해 중요한 분야는.

"바이오, 자율주행차, 5세대(G) 이동통신 등 다 중요하다. 그중 특히 중요하다고 보는 분야는 드론이다. 사람이 탈 수 있는 드론과 물류용 드론이다. 자동차 산업만큼 커질 가능성이 있다. 드론 산업이 커지고 있지만, 우리 기업들이 이 분야에 집중을 안 하고 있어 걱정이다. 한국이 잘할 수 있는 영역이 많은데 아쉽다."

현대차가 투자한 미국 탑플라이트가 제작한 드론의 모습.

―한국은 4차 산업혁명 준비를 잘하고 있나.

"한국의 4차 산업혁명은 위기에 직면해 있다. 플렉서블 디스플레이 등 일부 제품은 앞섰지만, 인공지능·드론 등은 미국보다 3~5년 정도 뒤처졌다. 마라톤에서도 100m 뒤처지면 따라가기 어렵다.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은 밤을 새우기도 하는데, 52시간 이상 일하면 회사 대표를 처벌하는 나라가 어디에 있나. 미국도 비슷한 제도가 있지만, 예외 규정을 두고 있다. 기업의 고위 임원과 관리자, 연구 개발직, 변호사와 회계사 같은 개인 사업자는 모두 예외다. 성과급, 스톡옵션 등 다른 인센티브로 보상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이런규제는 퇴행적이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혁신으로 인해 발생하는 갈등을 적극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정부가 이해 상충 문제를 제대로 조정하지 못 하는 점이 문제다. 옳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추진해야 하고, 안 되는 부분은 안 된다고 확실히 선언해야 한다. 혁신이라고 무조건 실행하라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를 고려해서 분명하게 추진해야 한다는 의미다. 원격 진료를 예로 들 수 있다. 섬에 있는 환자, 교도소에서 발생한 환자처럼 특수한 상황에선 원격 진료를 허용해야 한다. 일부에서 반대하더라도 밀어붙일 필요가 있다. 기득권의 저항에 부딪혀 여러 분야에서 혁신이 안 되는 게 안타깝다."

―사회적 인식 변화도 필요하지 않나.

"기존의 관행을 지키려는 기득권이 희생하지 않으려고 버티고 있어 혁신이 어렵다. 혁신성장을 위해서는 사회 구성원이 서로 양보하는 방향으로 변해야 한다. 내가 가진 것을 양보하면서 새로운 가치를 찾을 수 있다는 유연한 생각이 필요하다. 상생 대신 분쟁이 빈번한 사회가 되면 이를 해결하는 데 사회적 비용이 많이 든다. 분쟁 자체로 국가적인 에너지가 소모되기 때문에 손실이 크다. 신뢰를 기반으로 한 상생 사회가 만들어져야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는 사업을 실행할 수 있다. 기술 혁신 외에도 사회적 혁신이 필요하다."

―혁신의 시대에 젊은이들은 어떤 준비가 필요한가.

"4차 산업혁명 과정에서 현재의 직업 절반이 없어질 수 있다. 제조업 현장에선 로봇이 인력을 대체하고 회계 업무 같은 부분은 인공지능이 맡을 수 있다. 인력 재교육, 평생 교육이 필요하다. 젊은 세대는 문제 해결 능력과 창의력을 길러야 한다. 학생 때부터 다양한 경험을 통해 다른 사람과 협력하고 소통하며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대학교육도 문제 해결 능력을 기를 수 있게 바꿔야 한다. 스스로 공부하는 태도도 중요하다. 대학 졸업 후 의사 면허증이나 변호사 자격증을 땄다고 안심할 수 있는 시대는 갔다. 매일 공부해 매일 새로워져야 하는 시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