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변방 핀란드는 20세기 말 처음으로 세계의 중심에 섰다. 통신회사 노키아 때문이었다. 노키아는 1990년부터 20여년 동안 휴대전화 세계 1위를 기록했다. 노키아의 공고한 입지는 핀란드의 미래를 책임질 듯했다. 그러나 노키아의 쇠락으로 핀란드는 다시 변방으로 내몰렸다. 핀란드 정부는 몇 년 동안 자신들의 향후 100년을 책임질 산업을 고민했다.

2017년 12월, 핀란드 정부는 "인류 미래를 위한 거대한 실험을 시작한다"고 발표했다. 프로젝트명은 '핀젠(FinnGen)'. 2023년까지 국민 약 10%인 50만 명의 유전자 정보를 수집·분석하는 사업이다. 바이오·헬스 기술을 선점하기 위한 국가 차원의 거대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이다.

지난 7일 만난 이 프로젝트의 책임자 마크 데일리 박사는 "AI(인공지능) 등을 활용해 유전 정보를 분석 중"이라며 "몇 년 안에 제약사들과 환자별 맞춤 치료제를 내놓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핀란드는 국가가 나서서 유전자 활용 바이오·헬스케어 사업을 주도하고 통합·관리한다. 민간 기업의 의료 정보 수집·활용을 허용하는 '바이오뱅크법', '의료·사회 정보의 2차 활용법' 등 입법을 통해 규제를 철폐했다. 덕분에 민간 기업도 유전자 정보를 마음껏 이용할 수 있게 됐다. 민간의 바이오·헬스케어 사업을 활성화하고, 규제 철폐에 따른 위험은 국가가 통합 관리해 막아내는 절묘한 민관 협동을 이뤄낸 것이다.

규제가 풀리자 글락소스미스클라인·GE 등 글로벌 바이오·헬스 기업들이 핀란드로 몰려들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유전자 정보를 활용한 신약은 개발할 수 없다. 바이오·헬스 산업의 '미래 100년'을 좌우할 유전자·의료 정보 활용에서 규제의 벽에 막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