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삼성전자 비메모리 1등 전략의 열쇠는
AP로 반도체 산업과 타 제품 연결
'반도체 덩어리' 車시장도 진출
올해 안에 큰 그림 가시화 할 듯

장면 1│2월 20일(현지시각) 미국 샌프란시스코 빌 그레이엄 시빅 센터(Bill Graham Civic Auditorium)의 스크린 앞에 고동진 삼성전자 모바일 부문(IM) 사장이 등장했다. 흰색 셔츠에 푸른 정장을 입고 나온 그는 조심스럽게 정장 오른쪽 안쪽 주머니에서 ‘갤럭시 폴드’를 꺼냈다. 갤럭시 폴드는 반을 접었다 펼 수 있는 폴더블 폰이다. 지난해 11월 ‘삼성 개발자 콘퍼런스(SDC) 2018’에서 접었다 펼 수 있는 디스플레이를 공개한 적은 있었지만 이를 스마트폰에 집어넣어 완제품을 선 보인 것은 처음이었다. 고 사장이 펼쳐 보인 갤럭시 폴드는 전체 화면이 7.3인치로 미니 태블릿PC 수준의 화면 크기를 자랑한다.

디바이스 자체로도 경쟁사와 격차를 넓혔지만, 또 하나 주목할 만한 부분은 갤럭시 폴드가 동시에 여러 앱을 순식간에 구현시키는 멀티태스킹을 강조했다는 점이다. 이날 저스틴 데니슨 삼성전자 미국법인 모바일제품 전략 담당 부사장은 갤럭시 폴드의 펼친 화면에서 유튜브 동영상을 보면서 메시지를 보내고 인터넷 검색을 하는 등 3개의 애플리케이션(앱)을 동시에, 그것도 매우 빠르게 구현했다.

삼성전자가 20일(현지시각) 미국 샌프란시스코 빌그레이엄 시빅 오디토리움에서 공개한 폴더블폰 ‘갤럭시 폴드’. 3개 앱이 동시에 열린다.

장면 2│1월 15일 오후 청와대 경내. 이날 이 부회장은 미세먼지가 뿌옇게 낀 잔디밭을 문재인 대통령, 재계 총수들과 함께 산책했다. 커피가 담긴 텀블러를 들고 천천히 걸음을 옮기던 문 대통령은 문득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반도체 비메모리 쪽으로 진출은 어떻냐?"는 질문을 던졌다.

비메모리 반도체는 데이터를 저장하는 메모리 반도체(D램, 낸드플래시)가 아닌 반도체를 총칭하는 것으로 시스템 반도체로도 불린다. 컴퓨터의 중앙처리장치(CPU), 스마트폰의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자동차와 카메라용 반도체로 많이 쓰이는 이미지센서 등이 모두 비메모리 반도체다.

문 대통령이 비메모리 반도체를 언급한 것은 국내 최대 산업인 반도체가 올해부터 침체를 겪을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었다. 반도체 세계 1위 기업인 삼성전자는 지난해 반도체 부문에서만 86조 290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고 이 중 절반이 넘는 44조5700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역대 최고 실적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월 15일 오후 청와대 영빈관에서 산책하고 있다.

하지만 분기별로 시기를 나눠서 살펴보면 국내 반도체 산업의 위기는 조짐을 드러내고 있다. 지난해 4분기(10~12월)의 삼성전자 반도체 매출은 18조7500억원으로 전 분기보다 20% 줄었고 7조7700억원의 영업이익도 영업이익률(매출액에 대한 영업이익의 비율)로 따져 보면 전 분기보다 18.2% 줄었다. 삼성전자가 메모리 반도체를 중심으로 사업을 해왔는데 지난해 말부터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하락하면서 매출과 영업이익이 크게 준 것이다.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삼성전자는 글로벌 원톱(2017년 시장 점유율 D램 45.5%·낸드플래시 35.6%)이다. 2017년 메모리 반도체 시장은 1240억달러(약 139조6240억원)인데 이 중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점유율이 58%에 달했다. 하지만 삼성전자를 포함한 전체 한국 기업이 비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차지하는 시장 점유율은 3~5%에 머물고 있다. 비메모리 시장 규모는 2882억달러(약 324조5132억원)로 전체 반도체 시장의 70%를 차지한다. 현재는 인텔과 퀄컴 등 미국 기업들이 철옹성을 쌓고 있다.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대한 이재용 부회장의 대답은 간결했다. "어려울 때 진짜 실력이 나온다. 결국 선택과 집중의 문제다. 기업이 성장하려면 항상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한다."

대통령 앞에서 반도체가 화두로 나오자 기다렸다는 듯 ‘진짜 실력론’을 꺼내 든 이 부회장의 비메모리 반도체 1등 전략은 무엇일까. 갤럭시 폴드 발표와 이재용 부회장 청와대 발언의 접점을 잘 분석해보면, 그 전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우선 갤럭시 폴드를 비롯해 고성능 스마트폰을 구현해 나가려면 더 많은 데이터를 더 빠르게 처리할 수 있는 고성능 AP가 필요하다. 따라서 자체 수요만으로도 비메모리 시장 성장이 가능하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전개될 삼성의 비메모리 반도체 전략에는 2개의 큰 축이 있다고 말한다. 첫 번째가 AP 강화, 두 번째가 전장(자동차 부품) 반도체 강화다.

짐 엘리엇(Jim Elliott) 삼성전자 반도체부문 미주총괄 전무가 지난 1월7일(현지시각)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프리젠테이션하고 있다.

AP 시장이 현재는 메모리 반도체 시장 규모의 5분의 1에 불과하지만, 수요가 확대되면서 시장 규모가 급속히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초고속 인터넷으로 사물과 사물이 연결되는 사물인터넷(IoT) 상황이 되면 로봇청소기부터 신발, 의류, 자동차 등 대부분 제품에 AP가 장착될 것이다.

전문가들이 AP를 삼성전자 비메모리 전략의 핵심으로 꼽는 또 다른 이유는 AP가 삼성전자의 다른 제품들과 반도체 산업을 이어주는 연결고리이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AP를 통해 삼성전자가 팔고 있는 다른 제품들을 연결시키는 구상을 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가 다른 가전 기기 회사들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인공지능(AI) 연산이 가능한 AP를 개발해 이를 넣은 로봇청소기를 출시하면 AP뿐 아니라 청소기 판매까지 늘어날 수 있다. 삼성전자가 개발한 AP는 삼성전자의 청소기에 최적화 돼 있기 때문이다. 물론 삼성이 개발한 AP를 전 세계의 청소기에 집어넣어 팔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삼성전자는 자동차용 AP인 엑시노스오토V9을 독일 자동차 아우디에 탑재할 예정이다. 사진은 엑시노스오토의 광고화면.

전장 반도체 강화도 삼성전자 반도체 전략의 한 축이다. 전장 반도체는 자동차용 각종 센서나 내비게이션, 오디오에 들어가는 반도체를 말한다. 지금까지는 자동차를 만드는 데 반도체가 많이 필요하지 않았지만 자율주행 기술이 점점 확대되면서 자동차용 반도체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전장 기업 하만을 80억달러(약 8조9700억원)에 인수한 것도 전장 반도체 시장 확대를 위한 준비 작업이다. 한태희 성균관대 반도체시스템공학과 교수는 "자율주행 기능 때문에 필요한 다양한 반도체 칩들이 있는데 그중 상당 부분은 삼성전자가 만들 수 있는 제품들이기 때문에 이 시장을 삼성전자가 보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