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원전 공화국]⑥

"미세먼지가 매우 심했는데 청와대는 뭐했나. 미세먼지 (대응방안) 긴급보고에 더 화가 난다."(2019년 3월 6일)

"석탄화력발전 비율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탈원전 정책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2019년 3월 6일)

국가재난 수준의 미세먼지가 이어지자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정부의 무능함에 분노하는 목소리가 빗발치고 있다. 정부가 무리하게 탈원전 정책을 펼쳐 부작용으로 미세먼지가 늘어났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이달 1일부터 7일까지 국민청원 게시판에 ‘미세먼지’를 키워드로 한 청원글은 2700건이 넘는다. 국민청원 게시판이 운영되기 시작한 후 올라온 미세먼지 관련 청원 9743건의 27%에 달한다. 또 ‘탈원전’을 키워드로 올라온 청원은 일주일간 48건이었는데, 대부분 미세먼지를 화두로 제시하며 탈원전 정책을 재고하자고 주장했다.

서울 서대문구 안산에서 바라 본 서울 풍경. 서울 도심이 미세먼지로 흐릿하게 보인다.

◇ 국가재난 수준 미세먼지...탈원전 정책 실효성 의문

미세먼지 관련 청원은 탈원전 정책을 철회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어지고 있다. 실제 정부의 탈원전 정책 이후 원전 가동률은 줄었지만, 석탄화력 발전을 늘었다.

8일 한국전력 전력 통계 속보에 따르면 전체 발전량에서 원전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6년 29.9%에서 지난해 23.4%로 줄었다. 같은 기간 석탄 발전 비중은 39.6%에서 41.8%로, LNG 발전 비중은 22.4%에서 26.8%로, 신재생에너지 비중은 4.8%에서 6.2%로 각각 늘었다.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르면 올해 전국의 석탄발전설비는 총 3만6031MW(메가와트)로 전체 설비(12만6096MW)의 28.6%를 차지하고 있다. 지난해보다 1320MW 줄었지만, 2020년 3만7281MW, 2021년 3만9911MW, 2022년 4만2041MW, 2024년 4만4091MW로 다시 증가한다.

정부가 탈석탄 정책을 추진하는데도 석탄발전설비가 더 많아지는 이유는 노후화된 석탄발전소가 폐지되더라도 과거에 허가한 7.2GW 규모 석탄발전소 7기가 2022년까지 계속 건설되기 때문이다. 2013년 허가를 받은 선서천 1호기와 고성하이 1·2호기에는 지난해말 기준 이미 각각 7961억원, 1조8237억원이 집행됐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글을 올린 한 청원자는 "탈원전하면 석탄을 쓰는 화력발전을 안 돌릴 수가 없다"며 "차라리 원전을 장려하고 탈석탄 발전을 먼저 추진하라. 미세먼지 해결을 위해 탈원전을 국민투표하자"고 했다.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가 시행된 지난 1월 14일 노후 경유차 단속 CCTV가 설치된 서울 강변북로 가양대교의 모습.

◇ "보여주기식 아마추어 미세먼지 대책"

전문가들은 정부가 내놓는 미세먼지 대응책이 실효성이 없다고 지적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6일 노후 석탄화력발전소 6기에 대한 조기 폐쇄와 중국과 공동으로 서해에서 인공강우를 실시하는 것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노후 석탄화력발전소 6기 중 4기는 미세 먼지 관리 종합대책(봄철 3~6월 가동 중단)에 따라 이미 지난 1일부터 가동이 중단된 상태다. 인공강우도 아직 미세먼지 저감에 효과적인 수단인지는 검증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많다.

이덕환 서강대 교수(화학과)는 "사태의 심각성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는 아마추어 같은 미세먼지 대책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미세먼지는 고기압 상황에서 발생하는데 인공강우는 저기압 상황에서 가능하다"며 "현재 인공강우 기술은 베이징올림픽 메인경기장 정도의 좁은 장소에는 효과가 있지만 서울 시내 또는 한국 전체처럼 대규모 지역의 미세먼지를 해결하는데 사용하겠다는 것은 공상과학적 발상"이라고 했다.

정부는 기존 석탄발전을 미세먼지를 덜 배출하는 액화천연가스(LNG)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LNG도 석탄 발전에 비해서는 미세먼지 배출이 적지만 원전과 비교하면 미세먼지 배출이 많다.

석탄 발전을 통해 1㎿h의 전력을 생산할 경우 황산화물·질소산화물·먼지 등 오염물질은 561g, 초미세먼지는 120g이 발생한다. LNG 발전은 오염물질 171g, 초미세먼지 15g이 나온다. 반면 원전은 미세먼지를 발생시키지 않는다.

주한규 서울대 교수(원자핵공학과)는 "원전은 우라늄 핵분열을 통해 전기를 만들기 때문에 미세먼지 배출량이 없고 다른 에너지원에 비해 이산화탄소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며 "LNG 발전소는 2차 미세먼지를 유발하는 질소산화물도 많이 배출하는데다 도시 인근에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문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공약(미세먼지 30% 감축)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도 나온다. 정범진 경희대 교수(원자력공학)는 "공약이 정책화 되는 과정에서 전문가나 공무원의 의견이 수용되어 정책으로 만들어져야 하지만, 전문가 의견이 전혀 포함되지 않고 있다"며 "졸속 정책이 추진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