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안에 떠밀려온 갈매기 사체에 플라스틱 조각들이 칭칭 감겨 있다. 식도와 위장에서도 잘게 찢긴 빨간색 플라스틱 조각들이 쏟아져 나왔다. 범인은 하늘로 날려보낸 풍선이었다. 풍선 조각들이 목을 감고 내장을 막아 새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이다.

풍선처럼 부드러운 '연성(軟性) 플라스틱'이 바다 생태계의 새로운 파괴자로 떠오르고 있다. 새와 거북 등 바다 동물들이 해안까지 밀려온 풍선 조각들을 먹이로 착각하고 입에 넣었다가 죽음에 이르는 것이다. 빨대나 일회용 용기와 같은 단단한 플라스틱 조각은 몸에 흡수돼도 내장을 빠르게 통과하지만, 연성 플라스틱은 내장에 달라붙기 때문에 더 치명적이다.

빨대보다 32배 위험한 풍선 플라스틱

호주 태즈메이니아대의 로런 로먼 교수는 지난 1일 "51종의 바닷새 1733마리를 조사한 결과 풍선과 같은 연성 플라스틱에 의해 사망하는 경우가 크게 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국제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발표했다. 연성 플라스틱에 의한 생태계 피해를 보고한 논문은 이번이 처음이다.

피해 대상은 앨버트로스·슴새·바다제비 등 다양했다. 로먼 교수는 "연성 플라스틱은 몸 밖으로 잘 배출되지 않아 일반 플라스틱보다 32배나 더 위험하다"며 "연성 플라스틱 1조각을 먹은 새는 20%가 죽었지만, 9개는 50%, 93개는 100%였다"고 설명했다.

그래픽=양진경

풍선으로 인한 바다 동물의 피해가 알려지면서 미국에서는 버지니아주(州) 등 일부 주에서 풍선을 하늘에 날려보내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규제하기가 어려워 피해는 줄어들고 있지 않다. 전 세계에서 플라스틱 감축 노력이 펼쳐지고 있지만 해양 오염을 일으키는 플라스틱 종류와 피해지역은 점점 늘고 있다. 최근엔 해수면뿐 아니라 심해저에서도 플라스틱 쓰레기가 잇따라 검출되고 있다. 영국 뉴캐슬대 앨런 제이미슨 교수(자연·환경과학과) 연구팀은 지난달 27일 "수심 6000m 아래 해구(海溝) 6곳에서 채취한 심해 생물의 몸에서 플라스틱 조각을 발견했다"고 국제학술지 '영국왕립오픈사이언스' 학회지를 통해 발표했다. 연구에 따르면 마리아나 해구와 페루-칠레 해구, 일본 해구 등에서 채취한 새우 90마리를 해부한 결과 65마리(72%)의 소화기관에서 다량의 플라스틱 조각이 나왔다.

자연서 플라스틱 분해 아이디어 찾아

과연 플라스틱 오염의 쓰나미에서 벗어날 길은 없는 것일까. 국내 과학자들은 자연에서 플라스틱 오염 문제를 해결할 단서를 찾고 있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 감염병연구센터 류충민 박사 연구팀은 6일 "꿀벌부채명나방 애벌레에서 플라스틱의 주성분인 폴리에틸렌을 분해하는 효소 단백질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셀 리포트'에 실렸다. 폴리에틸렌은 플라스틱 중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지만 아직 이를 분해할 미생물이나 효소가 발견되지 않았다.

연구진은 벌집에 기생하는 꿀벌부채명나방 애벌레에 주목했다. 애벌레는 벌집을 이루는 밀랍(왁스)을 분해한다. 왁스의 긴 사슬 탄소 분자 구조는 폴리에틸렌과 매우 흡사하다. 연구진에 따르면 꿀벌부채명나방 애벌레 1마리가 폴리에틸렌 5g을 약 1시간 만에 분해했다. 연구진은 애벌레의 몸에 플라스틱 분해 효소가 있거나 아니면 애벌레의 소화기관에 사는 장내 세균이 플라스틱을 분해한다고 봤다.

답은 효소였다. 항생제를 투여해 장내 세균을 모두 죽여도 플라스틱 분해 능력에 변화가 없었기 때문이다. 류 박사는 "꿀벌부채명나방 애벌레가 비닐봉지까지 소화한다는 사실은 알려졌지만 체내에서 폴리에틸렌 분해 효소를 찾은 것은 세계 최초"라며 "향후 5년 안에 분해 효소를 대량생산하는 기술을 개발하겠다"고 말했다.

자연을 모방하면 분해가 더 잘되는 플라스틱도 만들 수 있다. 김범수 충북대 교수는 인도 호수에서 발견한 박테리아를 이용해 생분해성 플라스틱을 만드는 발효 공정을 개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