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든 게임이 모두 사라졌어요!"

프로그래밍이 취미인 최모(16)군은 얼마 전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 '주전자닷컴'을 찾았다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만들어 올린 '장애물 피하기' 등 게임 수십 건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사이트에는 "사전 심의를 받지 않은 게임을 인터넷에 올리는 것은 '불법'이란 정부 방침에 따라 관련 서비스를 중단한다" 는 안내 글이 올라와 있었다. 최군은 "컴퓨터 공부를 하면서 재미로 만든 습작(習作)이 불법일 줄은 몰랐다"고 했다.

일러스트=김성규

정부가 인터넷에 올라온 자작·습작 게임을 모두 '불법 게임 콘텐츠'라고 규정하고 단속에 나서면서 게임 개발자의 꿈을 키워온 청소년과 아마추어 프로그래머들이 반발하고 있다. 시대착오적 규제가 자유롭고 순수한 창작 의욕을 꺾는 것은 물론, 미래 소프트웨어 영재(英才)의 꿈마저 짓밟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단속에 대한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수습책을 내놨지만, 그마저도 '책임 회피용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또 받고 있다.

◇허공으로 사라진 습작 게임 7만건

6일 게임 업계에 따르면 '주전자닷컴'과 '플래시365' 등 커뮤니티 사이트 5곳이 최근 일제히 '자작 게임 게시판'을 폐쇄했다. 게임 제작을 공부하는 청소년과 아마추어 개발자들이 자신의 습작품을 평가받고 제작 노하우를 공유하던 공간이다. 사라진 습작 게임은 주전자닷컴의 4만건을 포함해 7만여 건으로 추정된다. '방 탈출하기' '공 받기' '옷 입히기'와 같이 멀티미디어 제작 도구인 플래시와 교육용 코딩 언어 '스크래치'를 이용해 만든 간단한 게임이다.

발단은 지난해 11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게임물관리위원회가 '등급 심의를 받지 않은 자작 게임물을 게시판에 올리는 것은 불법이니 삭제하라'는 경고장을 보낸 것이다. 박훈(47) 주전자닷컴 대표는 "게임 게시판을 닫지 않자 지난달 중순 정부가 아예 전체 사이트 접속을 차단했다"면서 "14년간 운영해 온 서비스를 끝낼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삭제된 게임은 제작자나 사이트 운영자가 따로 저장(백업)해 놓지 않은 경우 복구가 불가능하다.

이번 조치는 지난 2006년 제정한 '게임산업진흥법'의 규제에 근거하고 있다. 문체부는 "등급 심의를 받지 않은 게임물은 다른 이들이 이용할 수 없다"면서 "학생이 만든 게임도 예외는 아니다"고 밝혔다. 청소년이 자신의 습작 게임을 다른 이와 공유하려면 신청 절차를 거쳐 사전 심의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게임 업계 관계자는 "보통 게임 심의 1건당 수수료 3만~50만원을 낸다"고 말했다.

◇"우리 꿈 꺾지 말라" 반발하는 청년들

청소년과 젊은이들 사이에선 규제 철폐를 위한 집단적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달 26일 청와대 홈페이지 '국민 청원 및 제안'란에 '우리의 꿈을 꺾지 말아주세요!'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곧 중학교 2학년이 되는 학생'이라는 청원자는 "(자작 게임 규제는) 게임 개발자를 꿈꿔온 친구들을 범법자로 만들고, 미래 정보 사회의 주역이 될 꿈나무들을 말살하는 너무나도 불합리한 정책"이라고 했다. 6일 현재 이 청원에는 1만3000여 명이 참여하고 있다.

지난 1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는 자작 게임 심의 폐지를 요구하는 1인 시위도 벌어졌다. 시위에 나선 31세의 현직 게임 개발자는 "웹툰이나 인터넷 동영상 등 자작 콘텐츠는 심의 없이 자유롭게 배포되는데 유독 게임만 사전 심의를 받는다"면서 "헌법상 권리인 표현의 자유를 해칠 뿐 아니라, 형평성도 실효성도 없는 규제"라고 했다.

비판 여론이 커지자 정부는 "청소년이 개발한 비영리 게임은 심의 없이 공공기관이 별도로 구축·관리하는 사이트에서 서비스하는 방안을 검토할 계획"이라고 6일 밝혔다. 한 게임 업체 대표는 "결국 민간 사이트에서는 못 하게 막아놓고, 정부가 별도 사이트를 만들면 거기에서만 하라는 얘기"라고 했다. 이동섭 의원(바른미래당)은 "해외에선 대부분의 게임 콘텐츠가 자율 심의 대상이고, 학생들의 습작 게임은 규제 대상도 아니다"라면서 "스스로 실력을 쌓는 기특한 청소년들의 뜻을 살리기 위해 법 개정에 나서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