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테크놀로지 굴기(崛起·우뚝 섬)에 제동이 걸리고 있다. 스마트폰·전기차용 배터리·인터넷 등 주요 IT 분야에서 중소기업들이 연이어 파산하는 가운데 폭스콘·디디추싱과 같은 대형 기업마저 수천~수만명씩 직원 감축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중국 경제성장률이 28년 만에 최저로 떨어지고 중국 내수가 위축되면서 경기에 민감한 테크 기업이 가장 먼저 타격을 받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 양회(兩會·전국인민대표대회와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가 열린 3일 베이징의 톈안먼(天安門)광장에서 자원봉사자들이 스마트폰 사진을 찍고 있다. 2일 중국 인터넷 매체 소후닷컴은 "지오니가 파산 신청을 하는 등 중국 스마트폰 황금기가 저물고 있다"고 보도했다.

소후닷컴 등 중국 외신에 따르면 중국 내 점유율 7위 스마트폰 업체인 지오니가 작년 말 파산 신청해 현재 청산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중국 6위 스마트폰 제조사인 메이주도 현금 유동성 악화로 파산 위기에 처했다. 중소 스마트폰 제조사인 스마티잔·TCL도 판매 부진에 시달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스마트폰뿐만 아니다. 전기차용 배터리 시장에서도 중국 1·2위 업체를 제외하고는 중하위권 업체가 모두 자금 부족에 허덕이고 있다. 한때 세계 최고 가치의 유니콘 자리를 노렸던 중국 차량공유업체인 디디추싱마저도 최근 전체 직원의 15%를 감축하겠다고 밝혔다.

중국 내 스마트폰 판매량 줄자 중소업체 줄줄이 도산 위기

청산 절차를 밟고 있는 지오니는 한때 중국 스마트폰 제조사 중 5위였다. 화웨이나 샤오미보다 한참 이른 2002년 휴대폰 사업을 시작해 2010년대 들어서는 중·고가 스마트폰 전략을 폈다. 2016년 중국 시장 점유율은 5.6%로, 화웨이·오포·비보·샤오미의 바로 뒤였다. 중국 내에서는 삼성전자보다도 점유율이 높았던 것이다. 하지만 작년 시장 점유율이 1.1%로 급락했고 200억위안(약 3조3628억원)의 부채를 떠안으면서 회복 불능 상태가 된 것이다. 중국 스마트폰 6위인 메이주도 작년 중국 시장 점유율이 1%대로 추락했고 TCL은 1% 미만으로 줄었다. TCL은 본래 TV가 주력인 회사로, 프랑스 알카텔을 인수해 스마트폰 사업에 뛰어들었다.

하위권 제조사의 추락은 화웨이·샤오미 등 대형 업체에도 달갑지 않다. 이들의 도산이 시장 경쟁에서 밀린 탓도 있지만 그보다는 중국 스마트폰 내수 시장의 위축이라는 큰 흐름에 따른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 내 스마트폰 판매량은 2016년 4억6750만대로 정점을 찍은 뒤 계속 감소하고 있다. 올해도 4억80만대에 그칠 전망이다. 중국 최대 스마트폰 제조사인 화웨이는 지난 1월에 고용 축소 방침을 밝힌 상태다. 화웨이 런정페이 회장은 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상황이 생각만큼 녹록지 않다. 조직을 간소화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연이은 대량 감원…흔들리는 中 테크 굴기

중국 경기 둔화에 따른 위기감은 중국 테크 기업 전반으로 퍼지고 있다. 전기차용 배터리 시장에서는 작년에 중국 정부가 보조금을 일부 축소하자마자 1·2위인 CATLBYD를 제외한 100여 개 제조사가 모두 경영 악화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이다. 당장 3위였던 옵티멈나노 에너지는 운전 자금이 없어 작년 8월에 생산 라인을 멈췄다. 중소 배터리 제조사 난징인룽뉴에너지는 경영난으로 생산 설비를 압류당했고 루그로우도 폐업했다. 배터리업계 관계자는 "중국 배터리 제조사 가운데 절반 이상이 적자 상태"라며 "올해 대량 폐업 사태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중국 정부는 내년에 전기차 구매 시 주는 보조금을 중단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중국자동차기술연구센터는 최근 "지난해 중국 전기차 배터리 기업의 약 30%가 문을 닫았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세계 최대 전자제품 위탁 제조사 폭스콘이 지난해 10월 허난성 정저우 공장에 근무하는 계약직 직원 5만여 명을 기존 계약 기간보다 3개월 앞서 조기에 해고한 데 이어 작년 말에는 스마트폰용 강화유리 제조사인 중국 보언광학도 8000여 명을 해고했다. 중국 최대 차량공유 업체 디디추싱은 지난달 전체 직원 15%에 해당하는 2000여 명을 감원한다고 밝혔다. 중국 2위 전자상거래 업체 징둥닷컴은 지난달 임원의 10%를 줄이기로 결정했다. 김도윤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지난해 중국 경제성장률은 28년 만에 최저인 6.6%까지 위축된 데다 올해 세계 경제 전망도 밝지 않다"며 "올해 중국 IT 기업들은 그간의 성장 방정식을 버리고 적극적인 구조조정과 기술력을 앞세운 혁신을 도모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