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5일 오전 일본 도쿄 시내에서 고속버스로 2시간을 달려 후지산 입구에 도착한 뒤 다시 버스를 갈아타고 해발 1000m에 있는 야마나시(山梨)현 오시노(忍野)마을에 도착했다. 울창한 침엽수림 사이로 외관벽이 노란색으로 칠해진 20개의 대형 공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공장 사이를 오가는 회사 차량, 직원들의 모자·가방, 식당의 젓가락 포장지까지 전부 노란색이었다. 세계 최대 산업용 로봇기업 화낙(FANUC) 본사다. 이나바 요시하루 회장은 "창업 당시에 사람들이 공작 기계의 위치를 쉽게 알 수 있게 기기 색깔을 노랑으로 정했는데 이제는 우리 제품의 상징이 됐다"며 "5년 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가 우리 보고 '옐로 오컬트(occult·초자연적인 현상)'라고 불렀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나렌드라 모디(왼쪽에서 둘째, 셋째) 인도 총리가 일본 화낙 본사를 방문했다. 아베 총리는 도쿄에서 110km나 떨어진 이곳까지 모디 총리를 초청해 세계 최고의 자국 로봇 기술을 과시했다.

화낙은 제조업의 상식을 깬 기업이다. 대당 1억원이 넘는 정밀 공작기계를 만들면서 매년 매출의 30% 이상을 영업이익으로 남긴다. 제조업은 영업이익률이 10%만 넘어도 최고 수익 기업으로 꼽히는데 그 수준을 초월한 것이다.

◇기계 한 대가 고장 나도 나머지 99대가 공장 가동해

화낙은 현재 공장 내 수십 대 로봇을 하나의 로봇처럼 움직이게 하는 신기술인 '필드(FIELD)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지금은 100대의 로봇이 공장에서 돌아가다가 1대가 고장 나면 라인 전체를 멈춰야 하지만 앞으로 이 시스템이 적용되면 나머지 99대가 공정 속도를 늦춘 뒤 스스로 작업을 분담한다. 로봇팔에 주변을 보는 시야 기술을 적용하고 집단 지성과 같은 '필드 시스템'까지 완성되면, 사람의 개입 없이 항상 일정 수준의 제조 능력을 유지할 수 있다. 이나바 회장은 "올해 미국에 이 시스템을 선보인다"며 "앞으로 5~10년 안에 세계 공장에서 쓰이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타사의 로봇도 우리 로봇과 연결해 하나처럼 움직이도록 하는 것도 계획하고 있다"고 했다.

화낙이 이날 본지에 이런 신기술을 일부 적용한 '로봇을 만드는 로봇 공장'을 공개했다. 축구장 2개 정도 크기인 1만5000㎡(약 4500평) 대형 공장에 들어서자 사람보다 큰 60여 대의 노란 로봇팔이 굉음을 내며 상하좌우로 움직이고 있었다. 로봇팔 4대가 한 조(組)를 이뤄 작업을 진행했다. 한 로봇팔이 금속 부품을 깎은 뒤 천장 통로의 보관함에 넣으면 다른 로봇팔이 부품을 집어들어 조립했다. 이상이 발견된 부품은 다시 처음 로봇에 전달했다. 생산 라인에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화낙 관계자는 "현재 이 공장은 완전 무인화 공장의 전(前) 단계로, 최대 연속 720시간 동안 사람 없이 작업할 수 있다"며 "로봇의 시야 기술과 로봇 간 정보 교환 기술이 발달하며 사람의 개입이 크게 줄어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이 장악한 산업용 로봇 시장

일본은 세계 산업용 로봇 분야를 압도적으로 지배하고 있다. 일본 로봇 기업들은 세계 산업용 로봇 시장의 56%를 차지하고 있다. 전 세계 첨단 공장에 들어가는 로봇 2대 중 1대 이상이 일본산(産)이라는 의미다. 세계 톱10 산업용 로봇 기업 가운데 7개가 일본 기업이다.

이는 거의 완벽한 로봇 생산 생태계가 일본 산업계에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최첨단 산업용 로봇들은 첨단 센서와 고성능 카메라, 제어 부품이 기존 로봇의 2~3배 이상 필요하다. 로봇 스스로 판단해 움직이려면 스스로 보고 느껴야 하기 때문이다. 온도 센싱 분야의 세계 1위는 일본 지노이고 사람의 눈에 해당하는 'CMOS 이미지센서' 1위는 소니다. 로봇이 접촉의 강도를 감지하도록 해 사람과 일하는 협업 로봇에 필수적인 압력 센서 분야의 최고 기술 기업은 일본 덴소다. 로봇 관절에 들어가는 모터 분야에서는 니혼덴산과 옴론이 세계 최고다.

일본 로봇 기업들은 점유율 1위는 뺏겨도 기술력 1위는 놓치지 않고 있다. 그만큼 10~20년 뒤에 쓰일 미래 신기술 개발에 집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신개념의 첨단 제품을 개발할 때 최고 부품을 찾는 기업은 일본 기업으로 올 수밖에 없다. 이나바 화낙 회장은 최근 실적을 발표하면서 "단기 시황의 좋고 나쁨은 신경 쓰지 않는다. 최소한 10년, 20년 단위로 화낙의 가치를 봐달라"고 말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