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산업의 100년 미래를 상징하는 기업이 있다. 세계 로봇 산업의 최강자 화낙(FANUC)이다. 인간의 팔을 대신해 20세기 공장의 본질을 바꾼 화낙의 사무라이 로봇. 여기에 '인공지능(AI)'이라는 두뇌를 얹어 21세기 공장 혁명에 다시 도전하고 있다.

해발 1000m 후지산 기슭에 있는 화낙 본사 신기술 전시룸. 로봇 팔이 바닥에 흩어놓은 3~10㎝ 크기의 너트 10여 개를 하나씩 집어 각자 다른 상자에 넣고 있었다. 'IR(Infrared Rays·적외선) 비전'이란 이 로봇의 팔 끝에는 작은 카메라가 붙어 있다. '눈'이다. 눈이 적외선으로 너트의 모양과 크기를 계측하면 인공지능이 그 차이를 판단해 정확하게 분류했다.

로봇팔 끝에 달린 카메라에서 적외선을 쏘아 부품 크기와 형태를 파악하는 화낙의 산업용 로봇(위 사진). 이 로봇은 마치 사람이 눈으로 보며 작업하듯 크기가 다른 부품도 빠르게 집고 옮길 수 있다. 화낙은 적외선이 눈에 보이지 않지만 이해를 돕기 위해 사진에 빨간색 선으로 표시했다. 아래 사진은 일본의 한 자동차 공장에서 화낙 로봇팔이 협동해 자동차 섀시를 가공하고 있는 모습.

이 기능은 로봇의 집단 지성과 같은 '필드(FIELD) 시스템'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동안 로봇 100대 중 1대가 고장 나면 라인 전체가 중단됐다. 앞으로 이 시스템이 적용되면 나머지 99대가 공정 속도를 늦춘 뒤 작업을 분담한다. 네트워크로 두뇌를 연결한 로봇이 스스로 공장을 돌리는 것이다. 화낙은 최근 이 시스템으로 720시간 동안 사람 없이 공장을 가동하는 '완전 무인(無人) 공정'에 성공했다.

그동안 산업용 로봇은 인간이 정해준 틀에서 움직였다. 인간보다 수천 배 강한 근육, 수백 배 빠른 팔로 공장의 효율을 극대화했다. 이제 더 빠른 두뇌까지 탑재된다. 이나바 요시하루 화낙 회장은 "생물이 다세포로 진화한 것처럼 로봇도 진화하고 있다"며 "일본의 생산 기술에 완전한 로봇화가 더해지면 일본 제조업의 세계 톱 복귀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일본 제조업은 지난 20년간 한국·중국의 도전으로 부침을 겪었다. 하지만 야마나시(山梨)현 시골 마을에서 연간 7000억엔(약 7조원)의 매출을 올리는 이 기업은 흔들린 일이 없다. 스마트폰 금속 케이스를 가공하는 드릴 로봇 시장(세계 점유율 80%)을 비롯해 공장 자동화에 필수인 NC(수치제어) 공작기계(60%), 첨단 산업용 로봇(20%)에서 모두 세계 톱이다. 0.1나노미터(1나노는 1억분의 1)의 초미세 절삭이 가능한 기계처럼 '화낙이 아니면 불가능한 기기'를 팔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일본 산업은 화낙과 같은 숨은 강자에 의해 미래로 달려가고 있다.

기업은 지난 100년간 인간의 삶을 뿌리째 바꿨다. 앞으로 100년을 바꾸기 위해 지금도 끝없이 혁신한다. 내년 창간 100주년을 앞둔 본지는 올 1월과 2월 '질주하는 세계-대학' 편을 연재했다. 그 2부로 '질주하는 세계-기업' 편을 연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