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사, 의료자문 받고 보험금 덜 주거나 안줘
삼성생명·삼성화재 최다…상반기 중 규정 개정

금융감독원이 의료자문을 남용하는 보험업계의 관행을 고치기 위해 감독규정 개정에 착수했다. 보험사들은 소비자에게 보험금을 안 주거나 덜 주기 위해 의료자문을 남용한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금감원은 당초 보험업계가 매뉴얼을 만들어서 자율적으로 시정하는 방안을 추진했지만 실효성이 없다고 보고 직접 나서기로 했다.

27일 금감원과 보험업계에 따르면, 금감원은 작년 말부터 보험사의 의료자문 남용을 막기 위한 보험업감독업무시행세칙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보험업계의 자율적인 매뉴얼 개정과 함께 금감원은 올해 상반기 중에 감독규정 개정 작업을 마친다는 계획이다.

금감원이 보험사의 의료자문 남용을 막기 위해 제도 개선에 나섰다.

의료자문은 보험사가 보험금 지급여부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보험 소비자의 질환에 대해 전문의의 소견을 묻는 제도다. 문제는 보험사가 의료자문을 남용하면서 보험 소비자에게 보험금 지급을 거절하거나 삭감하는 수단으로 쓰고 있다는 점이다. 보험사의 의료자문 건수는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2014년 총 5만4399건이었던 의료자문 건수는 2015년 6만6373건, 2016년 8만3580건, 2017년 9만8275건으로 늘었다. 작년은 3분기까지 6만5733건을 기록했다.

보험사가 의료자문을 실시하면 절반 이상은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는 결론으로 이어졌다. 김창호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보험사가 의료자문을 의뢰한 건 가운데 보험금이 지급되지 않는 경우는 약 60% 수준에 달했다"며 "의료자문 제도는 환자를 직접 보지 않은 상태에서 자문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객관성과 공정성 측면에서 문제제기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국내 보험사 가운데 의료자문을 가장 많이 실시하는 회사는 삼성생명(032830)삼성화재(000810)다. 두 회사는 각각 작년에만 3분기 기준으로 5767건, 1만4172건의 의료자문을 실시했다. 생명보험사 중에는 교보생명(2314건), 한화생명(2145건)이 의료자문을 많이 했고, 손해보험사 중에는 KB손보(8381건), 현대해상(7662건)이 의료자문을 많이 했다.

보험사의 의료자문 남용 문제는 그동안 수차례에 걸쳐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는 장병완 민주평화당 의원이 "의료자문 제도가 보험금 지급거부 수단으로 악용되는 건 보험사의 갑질"이라고 지적했고, 금융소비자 권익제고 자문위원회도 2017년 12월 발표한 제도 개선 권고안에서 의료자문 제도의 악용을 방지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런 지적이 계속되자 윤석헌 금감원장은 작년 말 "보험사 의료자문 매뉴얼을 마련해 객관성을 높이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이후 금감원은 보험업계가 자율적으로 문제를 시정하는 동시에 감독당국 차원에서도 규정을 개정하는 게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금감원 관계자는 "보험사가 의료자문을 남용하면서 의료자문 제도에 대한 보험 소비자의 신뢰 자체가 사라진 게 문제"라며 "규정 개정 등을 통해 소비자의 신뢰를 회복하는 게 중요하다고 봤다"고 했다.

금감원은 상반기 중에 관련 규정 개정과 보험업계 차원의 매뉴얼 개정 작업을 함께 끝낸다는 방침이다. 보험사가 의료자문을 실시할 때 보험 소비자에게 제대로 설명하도록 하고 약관상 의료자문에 대한 동의 항목을 정확하게 고지하는 방안 등이 개정안에 담길 것으로 보인다. 또 명백한 사유가 없는 경우에는 의료자문을 실시하지 못하도록 제도의 남용을 막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보험업계의 의견을 취합해 최종적인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라며 "지난해 국감에서 제도 개선을 약속한 만큼 상반기 중에는 결과물을 내놓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