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상장지수펀드(ETF) 시장에서 운용 보수(fee) 내리기 경쟁이 치열하다. 펀드매니저가 투자 종목을 고르기 때문에 손이 많이 가는 주식형 펀드와 달리 주가지수 등락에 수익률이 연동되는 ETF는 펀드매니저의 손이 덜 가도 돼서 운용 대가인 보수를 내릴 여지가 많기 때문이다. 투자자들로서는 보수가 낮은 ETF에 투자하면 장기적으로 수익률이 높아질 여지가 커지기 때문에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식으로 보수율이 떨어지는 걸 환영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 ETF 시장은 글로벌 시장보다 ETF 운용 경쟁이 치열하지 않아 보수가 크게 떨어지지 않고 있다.

◇미국 ETF 평균 보수율, 9년 새 3분의 2 토막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미국 ETF 시장의 평균 보수율은 2009년 0.31%에서 지난해 말 0.2%로 하락했다. 9년 사이 보수율이 약 3분의 2토막이 된 것이다. 미국 ETF 시장에서 보수율이 평균인 0.2%에 못 미치는 경우의 투자금이 약 2조4000억달러로 전체(3조3700억달러)의 71.2%에 달한다.

특히 세계 최대 ETF 자산운용사인 블랙록(BlackRock)을 따라잡으려는 후발 주자들이 보수가 낮은 ETF 상품 라인업을 확대하고 있다. 2위 업체인 뱅가드(Vanguard)는 8450억달러를 ETF로 운용하고 있는데 평균 보수율은 0.074% 수준이다. 1144억달러를 ETF로 운용하고 있는 슈와브(Schwab)는 평균 보수율이 0.082% 정도에 불과하다.

미국 운용사들이 보수 낮추기 경쟁을 벌이는 이유는 시장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서다. ETF 운용 규모를 크게 늘리면, 보수율이 낮아도 운용사가 챙기는 전체 보수 총액은 유지할 수 있다. 투자자들 역시 보수율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 투자은행 브라운브러더스해리먼이 2017년 미국 ETF 투자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전체의 64%가 ETF 선택 때 보수가 매우 중요한 항목이라고 답했다. 반면 수익률이 중요하다고 답한 비율은 48%에 불과했다. 김남호 신영증권 연구원은 "보수가 '제로'라고 하면 투자자 유치 효과가 크기 때문에 조만간 보수를 받지 않는 운용사도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ETF 보수율, 미국보다 1.8배 높아

국내 ETF 시장은 지난 2015년 21조5725억원에서 최근 46조원이 넘을 정도로 급성장했다. 하지만 국내에선 미국과 달리 ETF 보수 낮추기 경쟁이 큰 효과를 보이지 않고 있다. 현재 국내 ETF의 평균 보수율은 0.36%로 미국(0.2%)보다 1.8배쯤 높다. 최근 몇 년 새 코스피200 지수를 추종하는 ETF를 중심으로 0.04~0.05%대의 낮은 보수율을 매기는 상품이 출시됐지만, 평균 보수율은 이보다 훨씬 높은 것이다.

국내 ETF의 보수율이 여전히 높은 이유는 국내 시장이 미국보다 작다는 점이 첫 번째로 꼽힌다. 시장이 큰 미국은 보수율을 낮춰도 운용사가 상당한 수입을 얻지만, 한국은 보수율을 낮추면 보수 총액이 크게 떨어질 수 있어 운용사들이 선뜻 경쟁에 나서길 꺼린다는 것이다. 대형 운용사들이 ETF 시장을 선점하고 있기 때문에 보수를 낮출 유인이 적다는 점도 원인으로 꼽힌다. 25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국내 ETF 시장에서 이른바 '빅3(삼성자산운용·미래에셋자산운용·KB자산운용)'가 운용하는 ETF 자산의 비중은 전체의 85.7%에 달한다. 삼성자산운용이 내놓은 '코덱스(KODEX) 200'은 보수율이 0.15%로 경쟁 상품인 미래에셋자산운용의 '타이거(TIGER) 200'(0.05%)이나 'KBSTAR 200'(0.045%)보다 높지만, 운용 자산액은 2배 가까이 많기도 하다. 증권계 관계자는 "인기가 있는 ETF는 보수율이 높아도 자금 유입이 수월하게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ETF(상장지수펀드·Exchange Traded Fund)

코스피200 같은 특정 지수의 등락에 따라 같은 수익률을 얻도록 설계된 투자 상품으로 거래소에 상장돼 일반 주식처럼 자유롭게 사고팔 수 있다.

☞펀드 보수(fee)

자산운용사가 펀드를 운용하는 데 대한 대가로 투자자들이 내는 비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