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지난달 28일 SK이노베이션의 장기신용등급(BBB+)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했다. 정유시장의 변동성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공격적인 재무정책이 SK이노베이션의 신용도를 기존 기대치보다 약화시켰다는 것이다.

S&P는 "SK이노베이션이 지난해 배당금, 자사주 매입을 포함한 주주환원에 1조9000억원을 썼다"면서 "향후 12~24개월 사이에 더 많은 배당금(지출)이 현금흐름을 압박할 것"이라고 했다. SK이노베이션의 주가는 지난해 초 20만6500원에서 지난해 말 17만9500원으로 1년 사이 13% 하락했다. 주가 하락에 실망한 주주를 달래는데 1조9000억원이라는 거액을 쓴 것이다.

21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엔가이드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처럼 적극적인 주주환원 정책을 펼치는 기업들이 늘면서 코스피·코스닥 상장사들의 2018 사업연도 배당금은 사상 최대인 30조원을 웃돌 것으로 전망된다. 2017년과 비교해 25~30% 증가한 수준이다.

그동안 우리 기업들이 ‘짠물배당’으로 주주환원 정책에 소홀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긍정적인 현상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배당금 확대는 ‘양날의 칼’이 될 수 있다. 단기적으론 주가를 부양하고, 회사의 이익을 나눠 주주를 기쁘게 하지만 곳간에 쌓인 여유 돈이 빠져나가면 투자여력이 줄게 된다.

배당이라는 눈 앞에 보이는 달콤한 유혹에 주주가 투자한 기업의 현금흐름은 나빠지고 경쟁력 확보를 위한 실탄까지 고갈될 수 있다. 출혈 배당으로 재무상태가 나빠지면 신용등급이 악화되고 주가가 떨어져 주주 또한 손실을 보게 된다. 과도한 배당은 독이 될 수 있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코스피·코스닥 상장사들은 한국 자본시장에서 주주 행동주의(Shareholder Activism·주주들이 투자 수익을 높이기 위해 기업 의사결정에 적극 참여하는 행위)가 급부상한 것이 부담스럽기만 하다. 증시 큰손인 국민연금까지 지난해 ‘스튜어드십코드(기관투자자의 의결권 행사 지침)’을 도입하고 배당 확대를 주장하면서 울며겨자먹기식으로 요구를 들어줄 수 밖에 없는 입장이다.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경제학)는 지난해 7월 전국경제인연합회 주최 특별대담에서 "대기업의 경우 단기 이익을 추구하는 주주들, 특히 외국인 주주들의 입김이 세졌고, (주주들이) 고배당, 자사주 매입 등을 요구하면서 장기투자가 힘들어졌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우리나라의 대부분 산업들이 중국에 맹렬한 추격을 당하고 있다"면서 "조선, 철강 등은 이미 크게 잠식당했고, 자동차, 휴대전화까지 중국의 위협이 느껴지고 있다. 반도체도 중국이 엄청난 투자를 하고 있기 때문에 우위가 얼마나 갈지 알 수 없다"고 했다.

중국이 과감한 투자로 턱밑까지 추격해온 상황에서 우리 기업들은 단기 이익만 추구하는 일부 주주들 눈치를 보며 배당금 확대·자사주 매입 같은 주주환원 정책 마련에 목매고 있다. 세계적인 저성장 경제 기조를 극복하고 미래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투자 대신 엉뚱한 선택을 하고 있는 우리 기업들의 미래가 어떤 모습일지 암울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