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서울 강남 압구정 로데오거리 근처의 룰루레몬 청담점. 회사원 조주현(31)씨가 레깅스(leggings) 한 벌을 샀다. 가격은 16만9000원. 조씨는 "2년 전쯤부터 일상생활을 할 때에도 레깅스를 가죽 재킷이나 스웨트 셔츠와 함께 입고 다닌다"며 "적절히 섞어 입으면 멋지고 아주 편하다"고 말했다.

레깅스는 신축성 좋은 소재를 써서 몸에 꼭 맞게 만든 바지다. 흔히 '쫄쫄이'로 불리기도 한다. 과거에는 요가 스튜디오나 피트니스센터에서 운동할 때 잠깐 입었던 옷이지만 2~3년 전부터 일상에서도 입는 소비자가 늘면서 관련 시장이 급속도로 커지고 있다. 평상복의 대명사인 청바지를 위협할 정도다. 외국도 다르지 않다. 미국 경제 매체 블룸버그는 최근 "레깅스가 20여년 만에 리바이스 같은 전통 청바지 업계를 위협하는 의류 품목이 됐다"며 "레깅스에 대한 소비자 수요가 좀처럼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고 보도했다.

쭉쭉 늘어나는 국내 레깅스 시장

지난해 10월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국내 최대 패션 행사인 '서울패션위크' 행사장. 레깅스 차림의 국내외 패션업계 관계자들이 여러 명 눈에 띄었다. 이 같은 장면을 담은 사진이 인터넷에 올라오자 패션 관련 커뮤니티에서는 '레깅스가 일상복이 맞느냐'면서 논쟁까지 벌어졌다.

운동할 때뿐 아니라 평상복으로도 레깅스를 입는 이들이 늘고 있다.

국내 의류업체는 레깅스가 '애슬레저(일상에서 입는 운동복)'의 대표 상품으로 침체한 패션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어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국내 의류 시장엔 2~3년 전부터 레깅스를 전문으로 하는 업체들이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2015년 6월에 설립된 국산 브랜드 안다르는 1만~4만원대 레깅스를 판매한다. 설립 첫해에 매출 10억원을 기록한 뒤 지난해 연 매출 400억원을 돌파했다. 지난달 일주일간 재고 할인 행사를 진행했을 때 온라인 사이트에는 모두 100만명이 접속했고 레깅스 30억원어치가 팔려나갔다. 이 업체는 현재 롯데·신세계·갤러리아백화점 등 21개 오프라인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이 밖에 젝시믹스·STL·뮬라웨어 같은 국내 브랜드도 2~3년 전부터 인기를 끌고있다. 롯데백화점의 애슬레저 부문 구매담당자 이슬기씨는 "레깅스 인기에 힘입어 2015년 단 한 곳에 불과했던 애슬레저 입점 브랜드가 지난해 25개로 늘었다"고 말했다.

한국패션산업연구원은 레깅스를 포함한 애슬레저 시장 규모가 2009년 5000억원 수준에서 2020년 3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했다. 2014년 7조1600억원이라는 화려한 실적을 기록한 국내 아웃도어 시장이 2017년 4조5000억원 규모로 쪼그라든 것과 대비된다.

청바지 콧대 꺾어

레깅스 열풍은 해외에서 더 거세다. 미국 인구조사국에 따르면 미국의 2017년 레깅스 수입량은 2억장을 넘기며 사상 처음으로 청바지 수입량을 제쳤다. 영국 정부는 지난해 레깅스를 소비 패턴을 반영하는 물가 상승 지표에 추가했다. 그만큼 소비자들이 보편적으로 구입하는 상품이라는 뜻이다.

해외 브랜드의 국내 레깅스 시장 진출도 잇따르고 있다. 아디다스 본사는 2016년 캐나다 레깅스 전문 브랜드 '룰루레몬'의 CEO 출신을 전략 고문으로 영입하며 관련 제품군을 확대했다. 국내에선 아디다스의 이른바 '삼선(三線) 레깅스'가 한때 품귀 현상을 빚기도 했다. 1998년 설립된 '룰루레몬'은 서울에 2016년 첫 매장을 열었다. 이 브랜드의 지난해 아시아 시장 매출은 중국·한국을 중심으로 전년보다 61% 늘어났다.

패션지 데이즈드 코리아의 이현범 편집장은 "아웃도어를 일상복으로 입는 건 유독 한국에서 두드러진 유행이지만, 레깅스 패션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라며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과 여성을 이른바 '코르셋'에서 해방시켜주는 활동성·실용성이 인기 요인"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