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제너럴모터스(GM)가 전 세계 구조조정을 추진하면서 군산공장 폐쇄 결정을 내린 지 1년이 지났다. 완성차 공장과 인근 부품공장이 문을 닫으면서 군산 경제는 큰 타격을 입었다. 군산공장 폐쇄로 사라진 직간접 일자리는 1만개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최근 한국GM 부평공장을 찾아갔다. 부평 2공장은 국내외 판매 부진으로 가동률이 크게 떨어지면서 공장 폐쇄설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부평공장이 제2의 군산공장이 될 수 있다는 경고가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점심시간쯤 찾아간 부평공장 인근 식당가는 한산했다. 공장이 어려워지면서 출근하는 직원이 줄고 구내식당을 이용하는 직원이 많아져 매출이 반토막이 났다며 식당 주인들은 한숨을 쉬었다.

한국GM 부평공장은 1공장과 2공장으로 나뉘는데 트랙스를 생산하는 1공장은 수출 물량 덕에 가동률이 100%에 달한다. 하지만 말리부와 아베오를 생산하는 2공장은 판매 부진에 가동률이 30%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2공장 주력 생산 차량인 말리부의 지난해 내수 판매는 전년보다 48.8% 줄었다. 공장 가동률이 떨어지면서 라인운영속도 변경(잡다운), 추가 감원 등의 우려로 내부 분위기는 뒤숭숭하다.

한국GM의 위기가 끝나지 않은 것은 한국GM의 경영정상화 협상이 정치적 이해관계와 맞물린 졸속 협상이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4월 정부와 한국GM의 2대 주주인 산업은행(지분 17.02%) 그리고 정치권은 협상 과정에서 GM에 질질 끌려다녔다. 당시 6월 지방선거를 앞둔 정치권에 GM의 한국사업 철수는 재앙과도 같았다. 일자리를 볼모로 GM은 협상의 주도권을 쥐고 챙길 수 있는 실리는 모두 가져갔다.

결국 정부가 산업은행을 통해 약 8000억원의 자금을 투입하기로 하면서 한국GM 사태는 일단락됐다. 정부와 산업은행은 한국GM 경영정상화 협상으로 15만6000개의 일자리를 10년 넘게 지킬 수 있게 됐다고 자화자찬했다. 하지만 정부는 급변하는 자동차 산업의 패러다임 변화를 제대로 읽지 못했다.

우선 GM이 구조조정을 추진하면서 근거로 내세웠던 ‘GM 비즈니스 포트폴리오’를 눈여겨봐야 한다. GM은 폐쇄할 공장을 선정하는 핵심 근거로 ‘잠재수익률’과 ‘사업장악력’을 든다. 문을 닫은 북미 5개 공장의 승용차 사업부문은 이 두 가지 기준에서 모두 수준 이하(low) 평가를 받았다. 한국GM의 잠재수익률·사업장악력은 모두 북미 승용차 사업부문보다 낮은 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보다 잠재수익률이 낮다고 평가한 사업(복스홀 브랜드 등)이나 사업장악력이 낮다고 평가한 사업(러시아 공장 등)에서 GM은 이미 모두 사업을 접었다.

국내 공장이 GM의 글로벌 경영 전략에 부합하는 곳이 아니라는 점도 한국GM의 지속 가능성에 의문을 품게 한다. 메리 바라 GM 최고경영자는 GM을 내연기관차 중심에서 전기차와 자율주행차 중심의 신기술 기업으로 바꿔가고 있다. GM은 2023년까지 20종의 전기차를 생산하기로 했지만 한국GM에는 전기차를 전혀 배정하지 않았다. 전기차나 자율주행차 등 GM이 미래를 걸고 있는 차종을 배정받지 못한다면 가동률이 떨어지는 한국GM의 공장 가동 중단과 철수설은 언제든 재점화할 수 있다.

한국GM은 8000억원짜리 산소호흡기를 쓰고 연명하고 있다. ‘수익이 나지 않으면 버린다’는 GM의 경영 스타일을 고려하면 GM은 언제든 한국GM에 칼을 들이댈 수 있다. 이미 신기술 기업으로 체질을 개선하겠다고 선언한 GM이 한국만을 위해 10년간 공장을 유지할 것이란 생각은 순진한 발상이다. GM의 철수에 대비해 전통적인 자동차산업에 의존해 온 한국 자동차산업도 이번 기회에 산업구조 개편 등 큰 차원의 구조 개편을 준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