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게임 시장의 ‘빅3’로 꼽히는 넥슨, 넷마블, 엔씨소프트가 지난해 모두 기대 이하의 성적표를 보였습니다. 최근에는 주가도 부진한 흐름을 보이고 있습니다. 세 회사는 실적 부진의 이유로 지난해 기대작들이 모두 올해로 출시가 연기됐기 때문이라는 설명을 내놓고 있지만, 업계에서는 현재 게임 시장 상황을 봤을 때 큰 기대를 갖기도 어렵다는 반응입니다.

이가운데 흥미로운 점은 세 회사가 미국, 일본 등 게임 '명가'들의 전유물로 여겨져온 콘솔 게임 시장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한국 게임 시장은 콘솔 게임 비중이 1% 미만으로 사실상 불모지나 다름 없습니다. 국내의 경우 온라인·PC 게임이 49%, 모바일 게임이 32% 수준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넥슨, 넷마블, 엔씨소프트 로고.

전통적으로 국내 게임사들도 콘솔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풍토가 강했습니다. 가령 ‘바람의 나라’, ‘리니지’ 등 대형 게임을 탄생시킨 것으로 널리 알려진 송재경 엑스엘게임즈 대표는 지난 2012년 한 강연에서 "콘솔 게임과 같은 구시대 유물에 대한 미련을 버려야 한다"고 말해 콘솔 마니아들 사이에서 매서운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 '노병은 죽지 않는다'…콘솔 게임, 견조한 성장세

그렇다면 시선을 미국으로 돌려보겠습니다. 콘솔 게임 시장은 6년전 송재경 대표의 말처럼 구시대의 유물로 되어버렸을까요?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세계 최고의 게임 회사들이 몰려있는 미국에서는 여전히 콘솔 게임 시장의 성장세가 유지되고 있습니다.

게임전문 시장조사업체 뉴주(Newzoo)에 따르면 미국 콘솔 게임 시장은 2016년 119억달러에서 2017년 124억달러, 2020년에는 138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3년동안 10%가 넘는 성장률을 기록할 것이라는 전망입니다. 반면 PC 게임은 전체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15년 이후로 계속 줄어들어 내년에는 20% 미만으로 떨어질 전망입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고 있는 소니인터랙티브엔터테인먼트(SIE)의 플레이스테이션의 경우 시리즈를 거듭할수록 판매량이 늘고 있기도 합니다. SIE에 따르면 플레이스테이션4는 발매 7년 만에 전 세계 누적판매 9160만대를 기록했습니다. 이전 세대 기기인 플레이스테이션3가 같은 기간 내에 8000만대 수준을 겨우 넘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콘솔 시장은 오히려 해마다 커지고 있습니다.

KOTRA 관계자는 "미국 게임시장은 2009년 이후 PC게임과 모바일게임의 성장에도 불구하고 가장 큰 시장인 콘솔시장의 침체로 2013년까지 감소세였다"며 "하지만 2014년부터 소니와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사의 신규 콘솔게임 등장과 모바일 게임시장의 성장으로 시장 규모 증가세를 나타내고 있다. 모바일게임의 성장이 눈에 띄게 커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콘솔게임시장을 넘지는 못한다"고 설명했습니다.

◇ 韓 게임사들의 뒤늦은 콘솔 도전

2015년~2020년 미국 게임 시장 내 콘솔, PC, 모바일 비중.

이가운데 넥슨, 넷마블, 엔씨소프트는 지난해부터 콘솔 게임 개발에 적지않은 투자를 단행하고 있습니다. 특히 엔씨소프트는 2018년 4분기 콘퍼런스 콜에서 콘솔 플랫폼과 협의를 통해 대규모 마케팅 출시를 계획하고 있다고 언급습니다. 또 향후 5년간 내놓을 3개의 대형 게임이 PC/콘솔 기반으로 진행될 예정입니다.

모바일 게임 개발에만 전념해온 넷마블은 지난해 2월 모바일게임 ‘세븐나이츠’ 지적재산권(IP)를 활용한 콘솔 게임 개발 계획을 밝혔고, 넥슨도 지난해 4월 콘솔 게임 개발 의사를 피력한 바 있습니다. 펄어비스와 펍지(PUBG) 역시 지난해 각각 검은사막과 배틀그라운드를 엑스박스, 플레이스테이션4용으로 내놓은 바 있습니다.

이처럼 한국 게임 회사들이 다시 콘솔에 눈을 돌리기 시작한 건 크게 두 가지 이유로 보입니다. 첫째는 콘솔이 과거 송재경 대표의 말처럼 '구시대 유물'이 아니라 계속해서 진화하는 플랫폼이라는 점입니다. 특히 AR, VR 등 신기술의 등장과 함께 게임 콘텐츠와 하드웨어의 최적화가 중요한 변수로 떠오른 상황입니다. 이같은 새로운 게임 환경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콘텐츠를 내놓고 있는 게 콘솔 게임사들이기도 합니다.

국내 게임사들의 실적 성장세의 원동력이었던 모바일 게임 시장에서 점점 수익성이 악화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옵니다. 국내 게임사의 한 관계자는 "모바일 게임 시장에 중소형 게임회사들의 진입이 빠르게 늘어나면서 경쟁은 더욱 심화됐고, 각 회사가 내놓는 작품들 역시 캐릭터와 스토리 면에서 큰 차별화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며 "중국계 모바일 게임사들의 가파른 성장세도 변수"라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다만 국내 게임회사들이 기존 콘솔 게임 회사들의 '장인정신'을 따라갈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습니다. 대표적으로 GTA의 개발사로 널리 알려진 락스타게임즈는 지난해 게임업계 최고 히트작 중 하나인 '레드 데드 리뎀션2' 개발에만 8년을 소요했습니다. 플레이스테이션의 대표적 타이틀인 '라스트 오브 어스', '언차티드' 시리즈를 만든 너티독 역시 게임 개발에 4~5년 이상의 기간을 쏟아붓고 있습니다.

김경민 KOTRA 실리콘밸리무역관은 "미국 콘솔 하드웨어시장은 오랫 동안 몇 개의 게임회사가 독식하는 등 진입 장벽이 높다"면서도 "하지만 지난해 배틀그라운드 등으로 세계적 성공을 거든 펍지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한국 게임회사들이 천편일률적인 MMORPG 게임이 아니라 양질의 콘텐츠를 개발한다면 승산이 있고 PC나 모바일로 구동되던 게임 콘텐츠를 콘솔로 확장하는 것도 하나의 전략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