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2일 일본 나고야 도요타시에 있는 도요타 본사 공장. 도요타 혁신의 현장이란 소개를 받고 찾아간 이곳에는 첨단 로봇 같은 자동화 설비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녹이 슨 철제 기계들과 손으로 태엽을 돌려야 움직이는 수동 설비들로 변속기를 만들고 있었다. 바로 1953년부터 구축된 TPS(도요타 생산 시스템·Toyota Production System) 라인이다. 하라타 시게노리 기계과장은 "다른 공장들은 모두 자동화돼 있지만 65년째 이곳을 유지하는 이유는 '기본'을 잊지 말라는 뜻"이라며 "모든 도요타 직원들은 TPS 정신을 교육받는다"고 했다.

복도 한쪽에는 기계 열을 식혀주는 송풍기 모터에 손으로 만든 바람개비 하나가 꽂혀 있었다. 하라타 과장은 "모터가 잘 돌아가는지 확인하려고 꽂아 놓은 것"이라며 "우리 부사장님(생산 총괄)이 가장 좋아하는 '가라꾸리'(からくり·소소한 아이디어)"라고 말했다.

이곳이 도요타 혁신의 심장 - 도요타의 첨단 자동차는 첨단 로봇이 만들고 있지 않았다. 도요타의 혁신은 녹이 슨 철제 수동 기계들이 가득한 공장에서 시작되고 있었다.(위 사진) 지난달 22일 도요타 TPS라인에서 만난 하라타 시게노리 기계과장이 바람개비를 들고 "송풍기 모터 작동 확인을 위한 작은 아이디어"라고 설명했다. 아래 사진은 아키오 사장이 지난달 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 첨단 스포츠카 수프라를 소개하는 모습.

그는 "TPS는 직원들이 시간과 노동의 낭비를 없애고, 불량을 제로(0)로 만들기 위해 직접 아이디어를 내 만든 기계들로 이뤄졌다"며 "도요타의 끊임없는 '가이젠(改善·개선) 정신'을 보여주는 곳"이라고 했다. 오하타 도노모리 미즈호증권 연구원은 "2009~2011년 도요타 위기 당시에도 도요다 아키오 사장은 어려운 말을 하지 않았다. 단지 '더 좋은 차를 만들자'는 단순한 슬로건을 내걸었다"며 기본에 충실했던 것이 위기를 극복한 비결이라고 했다.

33만명 거대 조직을 벤처 기업처럼 굴린다

아키오 사장은 현재 자동차 산업 상황을 '100년 만에 한 번 오는 대변혁기'로 정의하고 향후 100년을 준비하고 있다. 이를 위해 33만명의 거대 조직을 싹 뜯어고치며 '의사 결정 속도'를 높이고 있다. 지난달 1일엔 55명의 임원을 23명으로 줄이고, 차장·부장·상무 등 2300여명을 '간부'로 통합했다. 지미 마 도요타 섭외홍보부 계장은 "세상은 지금 빠르게 변하고 있다"며 "현장 목소리가 바로 전달되도록 하고, 빠르고 올바른 의사 결정을 내리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현장 전문가를 우대하는 정책에도 적극적이다. 도요타는 조직 개편을 발표하며 "임원 스스로 현장에 들어가 미래 모빌리티 사회를 위한 다양한 구상을 실제 세계에서 실현하려는 것"이라며 "나이에 상관없이 현지와 현물을 잘 아는 인물을 임원에 배치했다"고 밝혔다. 가와이 미쓰루 도요타 생산 총괄 전무는 지난해 생산직 출신 최초로 부사장에 오르기도 했다.

혼자서는 생존할 수 없다… 전방위 '동료 만들기(仲間づくり)'

과거의 도요타는 현대차처럼 수직 계열화를 통해 대부분의 부품·기술을 자체 해결해왔다. 그러나 지금은 태도가 완전히 달라졌다. 아키오 사장이 2016년 스즈키와 협업을 발표하며 "인프라 개발, 표준화를 위해선 동료 만들기가 필요하다"고 말한 뒤 전방위 동료 만들기에 나서고 있다. 자동차 컨설팅 업체인 아이아이네트워크의 가이자키 히로시 대표는 "기술이 워낙 빠르게 발전하기 때문에 도요타는 혼자 모든 것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가장 파격적인 협업은 작년 10월 일본 최대 통신사인 소프트뱅크와의 자율차 동맹 선언이었다. 아키오 사장이 손정의 사장에게 먼저 협업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하타 연구원은 "도요타는 차량에 대한 정보는 있었지만, (소프트뱅크가 보유한) 사람에 대한 정보는 없었다"며 "무인 전기차로 이동식 카페·의료 서비스 등을 제공하는 '이팔레트' 사업 등 자율차·모빌리티 사업에 큰 시너지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달엔 세계 최대 배터리 업체인 파나소닉과 배터리 공동 생산을 위한 합작사 설립을 발표했다. 파나소닉 기술력을 빌리는 동시에 대량생산에 공동 투자해 배터리 양산 비용을 낮추려는 것이다. 하이브리드차와 수소차에 집중하느라 전기차에 소홀했던 도요타는 지난해 덴소·아이신정기·다이하쓰·스바루 등 계열사들과 함께 EV(전기차) 연합을 구축하기도 했다.

도요타의 동료 만들기는 국적이나 업종, 경쟁사를 가리지 않고 있다. 미국 우버와 싱가포르 그랩 등 해외 모빌리티 기업에 6000억~1조원을 투자했고, 독일 폴크스바겐과는 트럭 생산을 위해 협업하고 있다.

도요타는 지난해 1조800억엔(약 11조원)을 연간 연구·개발비로 쓰는 등 2년 연속 사상 최대 금액을 미래에 투자하고 있다.

투자 대상은 CASE(커넥티비티·자율주행·차량공유·전동화)로 표현되는 미래차 분야다. 2015년엔 실리콘밸리에 자율주행연구소(TRI)를 설립, 현재 레벨 4~5단계(거의 완벽한 자율주행 단계)를 시험하고 있다. 도요타는 2030년까지는 현재 생산량의 절반인 550만대를 하이브리드·전기차·수소차 등 친환경차로 만들고, 이 중 100만대는 순수 전기차·수소차로 하겠다는 계획이다. 오하타 연구원은 "도요타는 구글이나 GM 같은 회사에 종속되길 원치 않고 글로벌 리더가 되고자 한다"며 "아직 가시적 성과가 크지 않는 전고체 배터리(한 번 충전으로 주행 거리를 파격적으로 늘려주는 배터리)에까지 투자하는 등 먼 미래를 보고 움직이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