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LG전자 같은 스마트폰제조업체들이 자급제폰을 출시하고 네이버까지 자급제폰 시장에 뛰어 들었다. 정부는 소비자 선택 폭이 늘어나면 요금할인 경쟁으로 통신비 인하 효과가 나올 것으로 전망해 자급제폰 정책을 꾸준히 내놓고 있다. 여야도 완전자급제 법안으로 휴대폰 대리점·판매점을 압박하고 있다.

하지만 휴대폰 대리점·판매점은 "현실을 모르는 소리"라며 일축하고 나섰다. 완전자급제 등으로 2만여개의 대리점·판매점이 없어지면 소비자들을 상대하던 7만여명의 ‘최전방 사단’이 없어진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택시 기사들이 일자리 보전을 위해 시위에 나선 것처럼 ‘제2의 카풀 사태’로까지 커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 네이버도 뛰어든 자급제폰 시장

네이버 온라인커머스 ‘스마트스토어’에 휴대폰 항목이 새로 생겼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의 자료를 보면 2017년 기준 한국 휴대폰 시장 내 자급제폰 비율은 약 8%다. 2018년에는 10%가 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삼성전자와 LG전자에서 자급제폰 라인을 확대하면서 국내 자급제 시장이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자급제폰은 약정없이 가전 매장 같은 곳에서 구입해 사용하는 휴대폰을 말한다.

네이버는 15일 쇼핑 중개 플랫폼·온라인커머스 ‘스마트스토어’에서 휴대폰 항목을 새로 만들었다. 휴대폰 판매업자 누구나 휴대폰을 판매할 수 있다. 스마트스토어는 입점·등록·판매 수수료가 무료다. 삼성전자나 LG전자도 지난해부터 프리미엄 스마트폰뿐 아니라 중저가 스마트폰도 자급제폰으로 출시 중이다.

◇ 정부·여야도 ‘자급제 시장’ 지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지난해 12월 내놓은 ‘소비자 관점의 완전자급제 이행방안 요약표’.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소비자 관점의 완전자급제 이행방안’을 통해 "통신사 가입 없이 휴대폰만 구입할 수 있는 자급제 모델을 20종 이상 늘리고 10만원대 스마트폰도 자급제 형식으로 출시하겠다"고 지난해 12월 밝혔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관계자는 "자급제폰 시장이 커지면 소비자 선택 폭이 늘어난다"며 "소비자 선택 폭이 커지면 통신사간 요금할인 경쟁으로 통신비가 인하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야(與野)도 완전자급제 법안 발의로 자급제폰 시장에 힘을 더하고 있다. 완전자급제는 통신사 요금제 같은 서비스 가입과 휴대폰 판매를 분리시키는 내용의 법안이다. 단말·요금제가 합쳐진 결합상품 같은 독과점 행태를 막고 경쟁을 하게 해 요금 인하를 유도한다는 논리다. 올해 입법이 목표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의원은 "투명성이 중요하다"며 "리베이트 비용으로 추정되는 3조9000억원이 어디로 가는지 어디에서 왔는지 불투명하다. 누군 싸게 사고 누군 비싸게 사는 환경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변재일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3년간 10조원에 달하는 리베이트 비용은 이동자 통신 요금으로 전가된다"며 "유통구조 개선으로 요금 인하 경쟁을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기업들이 자급제폰 시장에 뛰어들고 완전자급제가 시행되면, 통신사에게 받던 지원 비용으로 운영되던 휴대폰 대리점·판매점이 없어지는 것은 기정 사실이다. 소비자들이 밖(인터넷·가전 매장)에서 휴대폰을 사고 대리점·판매점에서는 개통·상담만 하게 되면서다.

대리점은 통신사로부터 기기 판매에 대한 수수료와 고객 사용 요금에 대한 일정 비율의 수수료를 받는다. 예를 들어 대리점이 한 고객에게 갤럭시S9을 판매하고 6만원 이상 요금제를 유치하면 기기 판매에 대한 수수료 20만원(통신사별 상이)을 받는다. 고객이 6만원 이상 요금제를 유지할 경우 매달 요금제에 대한 5~11% 수수료도 따로 받는다.

대리점 하위 조직인 판매점은 기기 판매에 대한 수수료만 대리점으로부터 받는다. 대리점이 일정 부분 수익을 떼고 건네줘 점점 수익이 박해질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판매점에서는 돈이 안 되는 휴대폰 개통을 거절하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국내 휴대폰 대리점·판매점은 2만여개로 7만여명의 종사자가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대리점·판매점이 없어지면 소비자의 보이지 않는 불편비용이 증가된다는 주장도 있다.

이종수 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는 "휴대폰 대리점과 판매점이 없어지면 소비자는 단말기와 통신 서비스에 대한 정보 탐색을 개별적으로 수행해야 한다"며 "이는 눈에 보이지 않는 소비자의 불편비용이 증가하는 셈이다"고 말했다.

◇ 휴대폰 판매점주 "우리가 봉사활동 단체냐…제2의 카풀 사태 일어날 수도"

전국택시노동조합연맹 등 4개 택시 단체가 지난해 10월 경기도 성남시 판교 카카오모빌리티 사옥 앞에서 ‘카카오 규탄 결의대회’를 열고 있다.

서울시 구로구에서 5년째 휴대폰 판매점을 운영 중인 A(43)씨는 자급제폰 시장 활성화 정책에 대해 "현실을 모르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A씨는 "최근 한 손님이 중고폰 하나를 가져 와서는 요금제나 유심 같은 걸 물어보면서 1시간을 잡아 먹었다"며 "정작 주 수익원인 휴대폰은 밖에서 사 가지고 오는데, 우리는 상담·개통을 자원봉사처럼 무료로 하는 게 말이 되느냐. 결국 이러다간 카풀 사태처럼 일자리 보전을 위한 시위가 발생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휴대폰 대리점·판매점 같은 오프라인 접점이 없어지면 소비자들의 불편함이 가중된다는 논리다.

박대학 전국이동통신유통협회 부회장은 "결국 유통점과 판매점이 없어지면 오프라인 접점이 줄어들면서 소비자들의 불편함이 가중되는 셈"이라며 "소비자를 대하는 최전방에서 고군분투하는 대리점과 판매점을 위해 서로 공생할 수 있는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 전문가는 완전자급제 입법 과정에서 수많은 국민들의 일자리가 없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는 정부의 일자리 창출 정책과도 반대된다고 설명했다. 카풀(승차 공유) 때문에 일자리 보전 시위에 나선 택시 기사들처럼 통신업계에서 ‘제2의 카풀 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김연학 서강대 기술경영대학원 교수는 "휴대폰 유통점이나 판매점이 없어지면 정부 정책과도 맞지 않는다"며 "현재 정부 정책 차원에서 일자리 창출에 힘쓰고 있는데 중산층에 필요한 7만여명을 위한 일자리를 아무런 대책 없이 없앤다는 건 정책과도 맞지 않는 일이다. 그들이 다시 재취업한다 해도 그 기간동안 어려움을 겪고 분명 상당수의 실업자들이 나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