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오후 12시(현지 시각) 인도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벵갈루루에서 차로 3시간 정도 달리자 안드라프라데시주(州) 아난타푸르 216만㎡(약 66만평) 부지에 대형 'KIA'(기아) 마크가 새겨진 건물이 나타났다. 기아차가 16개월여에 걸쳐 여의도 면적(290만㎡)보다 조금 작은 부지에 지은 연산 30만대 규모의 자동차 공장이다. 공장 전경이 국내 언론에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017년 10월 공사 시작 때만 해도 2m 키의 관목만 드문드문 있던 황무지였지만 기아차는 다이너마이트 1000t을 써 화강암 돌산을 깎아 평지를 만들었다.

로봇 팔이 척척척 - 29일(현지 시각) 인도 남부 오지인 아난타푸르에 기아차가 시범 가동을 시작한 자동차 공장에서 대형 강판 프레스 기기의 로봇 팔 여러 대가 힘차게 움직이고 있다. 이곳은 인도 시장 개척을 위해 기아차가 세운 첫 공장이다.

인도는 현대차그룹이 판매 부진을 극복할 성장의 돌파구로 낙점한 곳이다. 인도 시장 개척을 위해 공장 부지를 물색하다 주정부가 파격적인 세제 혜택을 주기로 한 이곳 오지까지 들어온 것이다.

현대차는 인도에서 연산 65만대 규모의 공장 2개를 이곳으로부터 300㎞ 떨어진 첸나이에서 가동 중이다. 지난해 인도 내수로만 55만대를 팔아 인도 승용차 시장점유율 16%, 내수 시장 2위를 지키고 있다. 아프리카·중동 등 수출까지 합치면 공식 생산 능력을 초과하는 71만대를 팔았다. 게다가 인도 자동차 시장은 지난해에도 5% 넘게 성장하는 등 점점 커지고 있다.

인도공장서 만드는 소형SUV - 기아차가 인도 공장에서 9월부터 양산할 예정인 소형 SUV(프로젝트명 SP2i)의 콘셉트 모델(SP).

그러자 기아차도 협력사들과 함께 총 20억달러(약 2조2340억원)를 투자해 공장을 지은 것이다. 글로벌 10대 자동차 브랜드 중 인도에 공장이 없는 유일한 브랜드가 기아차란 얘기까지 나온 상황이었다. 기아차는 이날 시범 가동식을 열고 9월부터 소형 SUV를 양산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시범 가동은 본격 양산 전 설비 작동, 직원 숙련도 등을 점검하기 위해 6개월 정도 시제품을 소량 생산하는 것이다. 박한우 기아차 사장은 이날 "기아차 인도 성공 스토리의 서막을 여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암울한 자동차 시장의 오아시스 '인도'

현대차는 중국·미국 판매는 부진하지만 인도에선 선전하고 있다. 1998년 공장을 처음 가동한 현대차는 지난 3년간 인도 내수에서 연간 4~5%대 성장을 지속했다. 그룹 전체 판매량에서 인도가 차지하는 비중도 2015년 5.9%에서 지난해 7.4%로 늘었다. 기아차가 연 30만대를 추가로 판매한다고 가정하면 이 비중은 10%대까지 늘어난다. 특히 인도 승용차 시장은 해마다 5~8%대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지난해에만 337만대가 팔릴 정도로 규모도 만만찮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KAMA)에 따르면 인도 자동차 산업 수요는 상용차까지 포함하면 약 405만대(2017년 기준)로 독일을 제치고 세계 4위 자동차 시장으로 도약했다.

내년에는 일본을 제치고 중국·미국에 이어 인도가 세계 3위에 올라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주요 생산 거점 축 한국·중국·인도로 재편

현대차 65만대 공장에 30만대 규모의 기아차 공장이 추가되면 현대차그룹의 인도 내 생산 능력은 총 95만대로 늘어난다. 현대차는 연내에 연 65만대 생산 능력을 75만대까지 늘린다는 계획도 갖고 있어 100만대 생산 거점을 구축하게 된다. 이에 따라 현대차그룹의 생산 축은 한국(334만대)·중국(270만대)·미국(71만대)·유럽(66만대) 순에서 한국·중국·인도·미국 순으로 바뀐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인도에서 생산되는 물량의 일부는 아프리카·동남아·중동 등까지 수출된다"며 "중국·미국 수요가 정체되는 상황에서 성장세가 견조한 신흥국 중심으로 생산·판매 축을 옮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한우 사장은 "4000명의 직접 고용과 7000명의 간접 고용을 창출하게 될 것"이라며 "프레스와 도장 등을 맡는 최첨단 로봇 300여대가 들어서고 공장은 모두 인공지능(AI) 시스템으로 관리될 것"이라고 말했다.

기아차는 하반기 소형 SUV 차량 출시 직후 분위기를 띄워 다가오는 11월 디왈리 축제 기간에 승부를 본다는 계획이다. 인도 최대 명절인 디왈리 기간에는 쇠붙이로 된 물건을 서로 선물하는 풍습이 있는데 자동차 역시 인기 상품이다. 인도 내 승용차 판매의 40%가 집중되는 때도 바로 디왈리 기간이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 연구위원은 "기아차 신공장이 본격 양산을 시작하면 성장세가 견조한 인도 시장에서 이미 인정을 받은 현대차 후광 효과를 볼 것"이라며 "그러나 스즈키가 중국에서 철수하고 인도 시장에 더 집중할 가능성이 있는 등 경쟁은 더 치열해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