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관료 출신인 박재식 신임 저축은행중앙회장이 지난 21일 취임과 함께 "과도한 저축은행 예금보험료를 단계적으로라도 낮춰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예금보험료를 둘러싼 금융계의 해묵은 갈등이 재연될 조짐이다.

예금보험료란 고객 예금을 받아 운용하는 금융회사들이 고객이 맡긴 예금을 보호하기 위해 예금보험공사에 매년 납부하는 보험료를 뜻하는데, 금융회사마다 그 요율에 차이가 크다. 저축은행 업계에서는 정부 정책 기조가 신용도 낮은 서민대출을 활성화하자는 것인 데다, 관료 출신 박 회장의 추진력이 더해지면 예보료 인하에 추진력이 붙지 않을까 기대하는 눈치다. 그러나 금융위원회와 예금보험공사에서는 "8년 전 저축은행 도산 사태로 쏟아부은 공적자금을 아직 반도 못 갚았는데 어림없는 소리"라고 맞서고 있다.

◇8년 전 저축은행 부실이 부른 기형적 예금보험료

현재 저축은행이 예금보험공사에 내는 예금보험료는 예금액의 0.4%에 이른다. 반면 은행은 0.08%, 보험과 증권업계 0.15%, 농협(금융) 등 상호금융 0.2% 내외다. 업종에 따라 신용도와 부실 위험에 편차가 있다는 점을 고려해도 차이가 큰 편이다. 저축은행 입장에서는 예금을 끌어올 때 은행보다 0.3%포인트 이상 불리한 조건을 감수해야 한다. 이런 일이 벌어진 이유는 8년 전 저축은행 부실과 줄도산 사태로 생긴 천문학적인 부실 처리 때문이다.

2011년 당시 부산, 솔로몬, 미래 등 업계를 대표하는 저축은행들이 부동산 개발 같은 부실한 투자처에 고객 자금을 무분별하게 투자했다가 업계 전체가 퇴출 위기에 몰렸다. 정부는 당시 27조2000억원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공적자금을 쏟아부었다. 저축은행들이 모아놓은 예금보험료만으로는 부실을 메우는 데 턱없이 부족해서다. 대신 정부는 이렇게 쏟아부은 공적자금을 저축은행은 물론, 은행과 보험 등 다른 금융회사 고객들이 모아놓은 예금보험료 계정을 헐어서 매년 조금씩 갚아 나가도록 했다. 지금도 저축은행 예보료는 매년 전액(全額)이 2026년까지 운용되는 예보료 상환 특별계정으로 들어가고, 은행, 보험, 증권에서 나오는 예보료도 45%는 특별계정으로 들어간다. 이렇게 8년 동안 예보료를 과거 저축은행 부실을 갚는 데 퍼부었지만 아직 상환 규모는 11조원을 갓 넘어(2017년 말 기준)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박재식 회장 "이제 내릴 때 됐다"지만…

박재식 신임 회장은 본지 통화에서 "(과거 부실 해결 문제를 중시하는) 정부와 예금보험공사의 입장을 이해한다"면서도 "지금 저축은행들은 당시와 무관한 회사들뿐"이라고 했다. 박 회장은 "문재인 정부가 서민 금융을 강화한다는데, 그러려면 중하위 신용자를 위한 대출영업에 특화된 저축은행들이 활동할 수 있도록 숨통을 틔워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예금보험료를 (다른 업권보다) 추가로 0.3%포인트 이상 내면 원가경쟁력이 떨어지고, 이를 메우려고 고(高)위험 금융상품에 투자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고 토로했다. 저축은행중앙회는 단계적으로 예보료를 최소한 상호금융사 수준인 0.2%까지는 낮춰달라는 입장을 금융위와 예금보험공사에 전달할 계획이다.

그러나 결정권을 쥔 금융 당국은 "어림없는 소리"라며 강경한 입장이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아직 특별계정으로 저축은행 부실을 절반도 메우지 못했다"며 "게다가 매년 부실을 메우는 데 들어가는 돈을 따져보면 저축은행 예금보험료는 매년 1500억원 안팎으로 연간 상환 금액의 5분의 1에도 못 미친다"고 반박했다. 이 관계자는 "지금도 다른 금융회사 소비자들이 저축은행 부실을 대신 때워주는 현실을 뻔히 알면서 (보험료 인하를 요구하는 것은) 염치가 없다"고도 했다. 금융위원회는 원칙적으로 저축은행 예보료 인하 문제는 부실 상환을 위한 특별계정 운용이 끝나는 2026년 이후에야 논의하자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