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전북 군산시 소룡동에 위치한 한국GM 군산공장. 굳게 닫힌 정문 주변은 사람의 발길이 끊겨 을씨년스럽기만 했다. 수개월간 방치돼 온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공장 정문에 큼직하게 세워진 흰색 바탕의 한국GM 로고가 붙은 표지판은 누렇게 변색돼 있었다.

한국GM 군산공장 주변에서 30분 넘게 머물렀지만, 지나다니는 사람은 찾을 수가 없었고 차량의 통행도 거의 없었다. 한 때 공장 주변에 어지럽게 나부끼던 노조의 현수막도 모두 사라졌다. 정문 한 켠에 위치한 주차장에 놓인 10여대의 차량만이 아직도 이 곳에 소수의 인력이 드나들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GM은 지난해 군산공장을 폐쇄했다. 사진은 굳게 닫힌 한국GM 군산공장 정문

제너럴모터스(GM)는 지난해 2월 군산공장 폐쇄를 전격 발표했다. 옛 대우자동차 시절인 1997년 문을 연 군산공장은 2011년 생산량 26만대를 넘어서면서 전성기를 누렸지만, 이후 자동차 판매 감소와 제너럴모터스(GM)의 유럽 시장 철수로 쇠퇴하며 결국 20여년만에 문을 닫았다.

공장이 문을 닫으면서 이 곳에서 일하던 직원들도 뿔뿔이 흩어졌다. 약 1000명의 인력은 희망퇴직을 선택해 회사를 떠났고 600여명은 잔류를 선택했다. 이 가운데 200여명은 부평과 창원, 보령 등 한국GM 내 다른 공장으로 전환배치가 됐지만, 남은 400명은 무급휴직을 하고 있다.

한국GM 관계자는 "현재 군산공장에는 소수의 사무직원과 A/S 부품 생산인력 등 30여명만 근무하고 있다"며 "이들도 오는 6월에는 전원 공장을 떠날 예정"이라고 전했다.

공장 인근의 부품 협력업체 10여곳도 대부분 공장들은 문을 굳게 잠근 채 가동을 멈추고 있었다. 정문 너머로 녹이 슨 폐자재와 쓰레기들이 외롭게 쌓여 있는 곳도 눈에 띄었다. 인적이 끊긴 거리는 전혀 관리가 되지 않는듯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문이 굳게 닫힌 한국GM 군산공장 인근의 한 부품업체. 내부에는 폐자재와 쓰레기들이 방치돼 있었다.

"지난해 군산공장을 떠난 직원들 가운데 새 일자리를 찾은 사람은 5%도 되지 않습니다. 대부분이 장기실직 상태에서 퇴직금으로 버티고 있죠."

지난해 군산공장을 그만 둔 박철우씨(38)는 씁쓸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그는 군산에서 태어나 이 곳에서 학업을 마치고 살아온 군산 ‘토박이’로 지난 2006년 한국GM 생산직 근로자로 입사해 12년간 근무했다.

박씨는 "퇴사 후 7개월이 지났지만, 아직도 새 직장을 찾지 못한 채 집에서 쉬고 있다"며 "생각보다 실직이 길어지고 있는데다 통장 잔고마저 줄어드니 하루하루 벼랑 끝에 몰리는 심정"이라고 토로했다.

"회사를 떠날 때는 여러 가지 계획이 있었죠. 10년 넘게 생산직 근로자로 일했으니 제조업을 하는 곳은 어디든 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안 되면 장사라도 하려고 생각했죠."

그러나 현실은 박씨의 기대와 너무도 달랐다. 완성차 업체는 물론 자동차 부품사들마저도 박씨가 들어갈 자리는 찾을 수 없었다. 경기 침체로 제조업이 내리막길을 걸으면서 다른 업종의 생산직 재취업도 좌절됐다.

한국GM 군산공장의 퇴직 근로자 박철우씨

"퇴사를 선택하지 않은 직원들도 하루하루 사는게 힘들다고 합니다. 특히 무급휴직을 선택한 직원들은 기약도 없는 재고용 소식만 기다리며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어요."

박씨는 그나마 미혼인 자신은 사정이 나은 편이라고 했다. 무급휴직 중인 옛 동료들 가운데 상당수는 일용직이나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군산공장은 70% 넘는 직원이 40~50대였다"며 "가족의 생계까지 위협 받게 되면서 극단적 선택까지 생각할 정도로 위험한 상황에 몰리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한국GM 군산공장이 문을 닫은 후 이 곳에서 근무하던 생산직 근로자 세 명이 지난해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그는 실명과 얼굴까지 공개하면서 꼭 이 말을 전해달라고 했다. "한국GM의 부평공장과 창원공장이 군산처럼 되지 않는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요? 잘못된 기업 경영이나 눈 앞의 이익에 눈 먼 노조의 파업과 같은 행태가 계속되면 결국 몇 년 뒤 똑같은 고통을 겪게될 겁니다. 일자리가 곧 ‘목숨’과 같다는 것을 기업, 노조, 정부가 다 절실히 알아줬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