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저조한 수익률로 투자자들로부터 외면받았던 '브릭스(BRICs) 펀드'가 다시 기지개를 켜고 있다. 브릭스는 지난 2001년 11월 골드만삭스 수석이코노미스트이자 전 영국 재무부 차관인 짐 오닐이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신흥 5개국이 2035년 주요 7개국(G7)을 따라잡을 것이라며 내놓은 개념으로, 5개국 영문 앞글자로 만든 용어다.

한국펀드평가에 따르면, 지난 18일 기준 21개 브릭스 펀드는 최근 한 달 평균 3.09%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국내 주식형 펀드 수익률(평균 2.1%)과 해외 주식형 펀드 수익률(0.6%)보다 높다. 최근 3개월 기준으로도 브릭스 펀드의 수익률은 3.15%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국내 주식형 펀드와 해외 주식형 펀드의 평균 수익률은 각각 -2.8%, -7.4%였다. 개별 펀드 중에서는 미래에셋자산운용의 브릭스업종대표연금전환형펀드가 한 달 새 5.18%의 수익률을 올리며 가장 성과가 좋았다. 이어 ABL글로벌자산운용의 브릭스펀드가 4.92%, 미래에셋e-오션브릭스인덱스펀드가 4.18%로 뒤를 이었다.

◇역대 최고치 갈아치운 브라질 증시

한때 브릭스는 월가에서 유망 투자처로 각광받았다. 하지만 금융 위기 이후 이들 지역의 증시가 급락했고 이후로도 정치 불안, 원자재 변수, 경제성장률 둔화 등의 이슈에 휘말리며 저조한 수익률을 기록했다.

2012년 4조5000억원대까지 치솟았던 국내 브릭스 펀드 설정액은 18일 기준 4778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브릭스 펀드의 6개월 수익률은 -5.65%, 1년 수익률은 -13.12%로 대부분 투자자들이 여전히 손실을 기록하고 있다. 브릭스의 열렬한 전도자였던 골드만삭스는 4년 전 브릭스 펀드를 청산하기도 했다. 수익률이 마이너스 90%에 가까워지자, 손절매에 나선 것이다. 하지만 정치 리스크를 해소한 브라질 증시가 지난해 말부터 큰 폭으로 오르면서 브릭스 펀드 부활의 계기를 마련했다. 브라질 보베스파 지수는 지난해 10월 친시장주의 성향인 사회자유당(PSL)의 보우소나루 후보가 새 대통령으로 선출된 이후 가파른 상승세를 보였다. 새해 들어서는 9만 선을 돌파,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지난해 경기 둔화 우려와 미·중 무역 갈등 장기화에 따라 우하향 곡선을 그렸던 중국 증시도 경기 부양책 기대 속에 올해 들어서는 반등 흐름을 타고 있다. 중국 상해종합지수는 지난해 1월 3580선을 찍은 후 올해 1월 초 2440선으로 1000포인트 이상 떨어졌지만, 이후 다시 상승하며 지난 21일 2610선을 회복했다.

◇브릭스 향후 전망은 엇갈려

지난해 미·중 무역 갈등으로 신흥국이 전반적으로 고전하는 가운데 러시아, 인도 증시는 타격이 덜했다는 점도 한몫했다. 러시아 RTS 지수는 이달 초 1060선에서 보름여 만에 1170선으로 100포인트 이상 올랐고, 같은 기간 인도SENSEX 지수는 3만6200대에서 3만6500선으로 300포인트가량 상승했다.

하지만 브릭스 증시가 상승 추세를 계속 이어갈지는 예단하기 어렵다. 그만큼 변수가 많기 때문이다. 이창민 KB증권 연구원은 "브라질 보베스파 증시는 단기적 관점에서 반등이 좀 더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며 "올해 말 10만7000선까지 상승할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다만 브라질 연금 개혁의 성패 여부, 보우소나루 대통령의 경제정책 실효성 등이 변수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중국 증시에 불안 요소가 많다. 올해 상반기 경제성장률이 더 꺾이고 미국과의 무역 분쟁 여파에 따라 수출 감소의 타격이 예상된다. 중국 정부의 경기 부양 정책이 얼마나 효과를 낼지도 변수다. 김두언 KB증권 연구원은 "지난해 연말 경제 공작회의에서 발표한 감세(減稅)와 인프라 투자 촉진책(지방정부의 채권 발행 한도 확대)이 실제 중국의 경제지표에 반영되는지 주시해야 한다"며 "경기 선순환의 첫 단계에 있는 고정자산투자(에너지·운송·공장 등 인프라 투자)의 반등 여부도 관건"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