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관투자자 중 최소 2곳이 ‘강성부 펀드’로 불리는 행동주의펀드 KCGI의 한진칼(180640)경영참여 선언에 동참하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23일 확인됐다. 익명을 요구한 한 자산운용사 대표이사는 "KCGI가 틀린 말을 한 것은 하나도 없다"면서 "조양호 회장 일가에 견제장치가 있어야 한진그룹이 더 잘 나갈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추후 주주제안을 구체화하면 동의할 것"이라고 했다.

또 다른 운용사 관계자는 "현 경영진은 경영 능력이 떨어진다는 점이 이미 입증된 것 아닌가 싶다"면서 "제안 내용을 봐야겠지만 현재로서는 동참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또 "현 경영진은 경영자가 아니라 조씨 일가의 ‘집사’들"이라며 "내부적으로 계산해봤는데 조씨 일가 때문에 낭비되는 회사 운영자금만 매해 50억~100억원가량"이라고 했다.

12월 결산법인인 한진칼은 오는 3월 말 주주총회를 열기 때문에 주총 안건은 3월 초에야 나온다. 하지만 조현덕, 김종준 현 사외이사의 임기가 오는 3월 17일 만료되기 때문에 사외이사 재선임 및 신규 선임 안건은 상정될 예정이다. 앞서 KCGI는 펀드가 사외이사 2명을 추천하고 이들을 중심으로 지배구조위원회를 구성하자고 제안했다. 이 때문에 KCGI는 사외이사 후보를 낼 가능성이 높다. KCGI외에 국민연금이 독자적으로 사외이사 후보를 추천할 가능성도 있다.

왼쪽부터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이명희 일우재단 이사장,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

◇경영능력·견제장치 미흡…KCGI 우호 여론 확산

증권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한진칼 경영권 분쟁과 관련해 KCGI에 손을 들어주자는 여론이 적지 않다. 한진가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고, 국민연금이 뒤에 든든히 서 있기 때문이라고 관계자들은 설명한다.

한 자산운용사 대표이사는 "‘땅콩회항’과 ‘물컵갑질’, ‘직원 폭행’ 등 오너 이슈는 물론이고 경영 능력도 한참 뒤쳐진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운용사 대표이사도 "가장 실망했던 사건은 2014년 제수씨(최은영 전 한진해운 회장)가 경영하던 한진해운을 채권은행 동의 없이 인수했던 사건"이라며 "결국 이 때문에 한진그룹 재무지표는 상당히 악화했는데, 이 정도의 내부 견제도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반드시 독립적인 사외이사 선임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앞서 KCGI는 ‘한진그룹의 신뢰회복을 위한 프로그램 5개년 계획’이라는 제목의 자료를 통해 ‘땅콩 회항’이 있었던 2014년 기준으로 조양호 회장 일가의 대한항공(003490)총자산에 대한 실질적 소유권은 1.5%에 불과하며, 이 정도 지분으로 전체 그룹을 좌지우지하고 직원들에게 갑질을 일삼는 것은 충격적이라고 밝혔다. 펀드는 총자산을 부채 대비 자산, 지분율로 나눠 ‘실질적 소유권’이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KCGI는 일단 지배구조위원회와 보상위원회, 임원추천위원회 설치 등 앞서 제안한 내용에 대한 한진그룹 측 회신을 기다리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한진그룹은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 때문에 KCGI는 주총 개최 시점에 현 조양호 회장, 조원태 사장 해임안과 사외이사 선임 안을 낼 것으로 보인다.

현재로서 이사 해임안이 통과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사 해임안은 주총 특별결의사항이다. 특별결의는 발행주식 총수의 과반수 출석, 출석 정원의 3분의 2 이상 찬성이 필요하다. 현 경영진 입장에서는 33%만 확보하면 안정권인 셈인데, 조양호 회장과 특수관계인의 한진칼 지분이 28.93%에 달한다.

◇사외이사 선임 가능성은 있어…한투밸류 "검토 중"

이사 해임안이 통과될 가능성은 낮지만, 강성부 펀드 측이 요구하는 사외이사는 선임될 가능성이 있다. 사외이사 신규 선임은 보통결의 요건으로 발행주식 총수의 4분의 1 이상 찬성과 출석 정원의 과반수 찬성을 필요로 한다. 익명을 요구한 운용사 대표는 "사외이사 선임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면서 "명분과 실리 모두 갖추고 있어 다른 기관투자자들도 동참할 것"이라고 했다.

한진칼 지분은 KCGI가 10.81%, 국민연금이 7.34%를 보유하고 있다. 또 한국투자신탁운용과 크레디트스위스가 3.81%, 3.92%를 보유 중이라고 공시한 바 있는데, 5% 이하는 공시의무가 없어 이보다 낮아졌을 가능성이 있다. 이외에도 C증권이 작년 말 주식을 대거 매수해 5% 가까이 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작년 말 기준 기관은 전체 30.48%의 지분을 들고 있다. (☞관련기사 : [단독] C증권 등 기관, 한진칼 지분 대거 매집…표대결 임박<2019.01.22>)

결국 30%의 지분을 갖고 있는 기관과 40%가량인 개인투자자들이 어느 쪽 손을 들어주느냐에 따라 사외이사 선임이 결정될 전망이다. 한국투자밸류운용의 금대기 상무(CMO)는 "(어느 쪽 손을 들지) 내부적으로 검토 중"이라고 했다. 한국투신운용 또한 "아직 정해진 바 없다"면서 "주총안건이 결정되면 자문 자료를 검토한 뒤 내부 심의를 거쳐야 한다"고 했다.

증권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아직 한진칼, KCGI 모두 다른 기관투자자들에게 접촉하지는 않고 있다. 강성부 KCGI 대표는 "따로 기관을 만나 설득하거나 하는 절차를 밟진 않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