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최대 명절인 설을 보름 가량 앞두고 ‘차례상 물가’에 비상이 걸렸다. 지난해 말부터 육류와 과일, 수산물, 쌀 가격이 많이 올랐기 때문이다. 정부가 수급 안정을 위해 소고기, 돼지고기, 사과, 배 등의 공급을 늘렸지만, 오르는 명절 물가를 잡기에는 역부족이다.

가상으로 만들어 본 설 차례상 이미지.

조선비즈는 21일 전통시장(서울 광장시장)과 대형마트(서울 이마트 왕십리점)를 찾아 차례상 장보기를 해봤다. 지난해 설 차례상 비용과 비교하기 위해 전통시장과 대형마트에서 지난해 구매했던 품목· 용량에 맞춰 장을 봤다.

미니차례상을 준비한 결과, 전통시장은 총 11만5370원, 대형마트는 13만3760원이 들었다. 전통시장은 지난해 설보다 2만1370원이 올랐고, 대형마트는 7420원이 올랐다. 대형마트는 대량 계약으로 물가를 잡았지만, 전통시장은 오르는 물가를 피하지 못했다.

전체적으로는 전통시장이 대형마트보다 저렴했지만, 사과, 배, 밤, 흙대파, 대추, 시금치 등 과채류와 닭고기, 조기는 대형마트가 더욱 저렴했다.

전통시장과 대형마트에서 모두 가격이 오른 품목은 닭고기, 동태살, 소고기, 배, 대추, 도라지, 다시마였다.

2019년 설 전통시장과 대형마트 설 차례상 식료품 가격. 전통시장은 지난해보다 2만1370원, 대형마트는 7420원 더 들었다.

◇물가 상승 직격탄 맞은 전통시장...온누리 상품권으로 1만원 덕 보기도

전통시장에서 차례상 식재료를 구매하기 전, 은행에 들러 온누리 상품권을 샀다. 온누리 상품권은 전통시장 활성화를 위해 정부가 발행한 상품권으로 전국의 모든 전통시장에서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다.

먼저 서울 광장시장 앞 NH농협은행에 들러 10만원을 뽑았다. 설명절을 앞두고 할인율이 5%에서 10%로 상향적용되는 첫날(21일)이라, 아침부터 온누리 상품권을 구매하려는 고객이 10명 가까이 줄을 섰다. 20분을 기다리고서야 온누리 상품권 1만원권 11장을 받아 들고 길을 나섰다.

온누리상품권 10장과 1만원을 들고 쇼핑에 나섰다. 지난 설 차례상은 총 9만4000원이 들었지만, 이번 설에는 11만5370원을 썼다.

전통시장에서 물품 구매를 시작하자마자, 지난해에 비해 오른 물가를 실감했다. 한파 등 계절적 특이 사항은 없었지만, 과일과 임산물 등은 지난해보다 소폭 높은 가격이었다. 배(4입)는 지난해 대비 7000원 올랐고, 대추(1봉)는 2000원 올랐다.

한우 국거리(180g)와 산적용(190g)도 지난해 설에 비해 각각 2000원, 1500원씩 올랐다. 출하예정 마릿수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감소하면서, 한우 도매가가 상승했기 때문이다. 닭고기 한마리는 지난해 6000원이었지만, 올해 8000원으로 2000원 올랐다. 올 겨울 조류독감(AI)이 발생하지 않았고, 이상기온으로 닭의 번식률이 떨어지면서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했다.

21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장시장 과일 상회. 지난해에 비해 배 가격이 크게 올랐다,

물가 직격탄을 맞았지만, 전통시장만의 매력도 있었다. 먼저 온누리상품권 덕에 만원이 더 생겨 이득을 봤다. 물가가 오른 상품도 말 한마디에 깎아주는 정(情)도 있었다. 식품상회에 들어서 "황태포 가격이 오른 것이냐"고 볼멘소리를 하자, "지난해 가격에 맞춰주겠다"며 깎아줬다. 양손 가득 짐을 들고 다니자 대중교통 타는 곳까지 함께 들어주는 따뜻함도 있었다.

◇ 대형마트 전통시장보다 ‘과일’, ‘닭고기’ 등 일부 품목 저렴

대형마트는 지난해 설과 동일하게 업계 1위인 이마트(서울 왕십리점)를 택했다. 대형마트 차례상 장보기 총액은 13만3760원이었다. 전통시장보다 1만8390원 비쌌고 지난해 설 차례상(12만6340원) 총액보다는 7420원 더 많이 들었다. 전반적으로 과일은 대형마트가 전통시장보다 저렴했고 소고기는 전통시장이 대형마트보다 가격대가 낮았다. 시금치, 고사리, 도라지 등 채소 역시 대형마트가 더 비쌌다.

닭고기,사과, 배, 밤, 흙대파, 대추, 시금치, 조기는 대형마트가 전통시장보다 더 저렴했다. 대량구매가 가능하고 회전이 빠른 상품들은 마트 측이 사전에 대량구매를 통해 가격경쟁력을 확보했기 때문이라고 이마트 관계자는 설명했다.

20일 저녁 서울 이마트 왕십리점을 찾은 고객들이 시장을 보고 있다.

사과는 낱개로 파는 상품이나 소량으로 파는 상품이 없어 한 봉에 7~8개씩 들어간 제품을 구매했다. 사과의 경우 전통시장에서는 3개를 9000원에 판매했는데, 이마트에서는 8개를 9980원에 팔았다. 개당 가격은 대형마트가 훨씬 저렴했지만 낱개 판매는 하지 않는다는 단점도 있었다. 다른 품목들도 묶음 포장이나 일정 크기 이상으로 포장돼 있어 필요한 만큼만 구매하기 힘들었다. 또 이런 소품목들의 경우 별도 포장 비용이 포함됐기 때문에 전통시장보다 가격을 높이는 요인으로 보였다.

전통시장은 주인과 흥정을 통해 1000~2000원 정도는 즉석에서 바로 할인받을 수 있었지만 대형마트는 정찰제이기 때문에 원 플러스 원 이벤트나 할인행사가 있는 날 방문하는 것이 유리했다. 가격적인 면에서는 전체적으로 전통시장이 앞섰지만, 쇼핑 편의성 면에서는 대형마트가 뛰어났다. 카트를 끌수 있어 물건을 고르기 편리했고 한겨울 따뜻한 실내 환경은 대형마트만의 장점이었다. 또 마트 직원들이 물품 위치를 안내해 줘 필요한 물품을 빨리 찾을 수 있었다.

전통시장은 온누리상품권을 사용해 10% 가량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었는데 대형마트 또한 전용 신용카드, 마일리지 적립, 캐시백 등 혜택이 있어 실제 구매가는 이보다 최대 5%까지 저렴해질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