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 증권사에 가상통화 거래소 계좌 개설 금지

금융위원회가 증권사의 가상통화 거래소 계좌 개설 업무를 사실상 금지하자, 이 서비스를 준비해왔던 업계가 난색을 표하고 있다. 업계는 정부 방침이 핀테크 산업 규제를 완화하겠다는 기조와 맞지 않고, 은행에서만 해당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역차별이라고 주장했다. (본지 17일자 ‘금융당국, 증권사 가상통화 거래소 계좌 개설도 금지‘ 참조)

◇서울시가 후원한 ‘증권사-가상통화 거래소 입출금 서비스’ 무산 위기

지난해 서울시 지원(창업 지원금 및 서울 마포 창업허브 입주)을 받아 해당 사업을 진행해왔던 핀테크 스타트업 A사는 사실상 이번 서비스 개발 계획이 무산될 위기에 놓였다고 말했다.

이 업체는 증권사에서 기획 및 IT 업무를 담당했던 사람들이 모여 2017년 1월 설립됐다. 증권 관련 핀테크 서비스를 구상하던 중 증권사와 가상통화 거래소 간 입출금 서비스를 기획해 이듬해 서울시와 산업진흥원의 후원을 받아 본격 개발에 착수했다. 이 프로젝트에는 5개 증권사가 참여 의사를 보였다.

A사가 기획한 서비스는 증권사가 펌뱅킹(firm banking) 방식으로 가상통화 거래소 법인계좌와 개인 고객 계좌를 관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펌뱅킹은 기업과 금융회사를 컴퓨터 전용회선으로 연결해 기업이 손쉽게 자금을 관리할 수 있도록 하는 서비스다. 법인계좌의 입출금 현황을 실시간으로 보고 급여를 포함한 모든 법인 자금을 개인 계좌로 입금할 수 있다. A사는 가상계좌를 이용하지 않고 고객의 실명 기반 위탁 계좌를 그대로 이용하는 방식의 가상통화 거래 입출금 서비스 개발을 추진중이었다.

그러나 금융위는 최근 이 같은 서비스가 현행 법상 불가능하다는 법령해석을 냈다. A사가 금융위 측에 법령해석 질의를 제출한 지 7개월이 지난 후에 나온 답변이었다. 금융위는 증권사의 가상통화 거래소 법인계좌 개설은 업계 협의를 통해 가능하지만, 법인계좌에 들어온 자금을 투자자 예탁금으로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계좌간 입출금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가상통화 거래소 입출금 서비스를 사실상 금지한 것이다.

박정훈 금융위 자본시장정책관은 "자본시장법 상 증권사 계좌 간 자금 이체가 가능하려면 투자자 예탁금이어야 하는데 가상통화 거래소에서 이체하는 자금은 투자자 예탁금으로 볼 수 없다"며 "투자자 예탁금은 금융투자 상품을 매매하기 위한 자금이어야 하는데 가상통화는 금융투자상품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16일 서울 마포구 서울창업허브에서 열린 핀테크 현장감담회에 참석해 입주사들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이날 최 위원장은 올해 핀테크 산업을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혔다.

◇"핀테크 활성화 기조와 상충, 은행에만 혜택" 비판

A사는 금융위의 이 같은 방침이 ‘핀테크 활성화’ 기조와 상충된다고 주장했다. 회사 관계자는 "며칠 전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A사가 입주해 있는 서울 마포 창업허브에 와서 핀테크 규제 개혁을 통해 산업 활성화에 나서겠다고 했는데, 정작 이곳에 입주해 정당하게 심사를 받고 사업을 준비하는 곳의 발목을 잡았다"며"겉으로 규제개혁이라고 하지만 현실과의 괴리감이 매우 크다"고 했다.

회사는 지난해 3월 금융투자협회로부터 증권사가 가상통화 거래소의 입출금서비스를 제공해도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받았던 터라 금융위의 방침이 더 당혹스럽다고도 했다. 당시 금투협 자율규제위원회는 금융위가 발표한 ‘가상통화 자금세탁방지 가이드라인’에 따라 증권사가 가상통화 거래소를 실사해 문제가 없는 경우 거래를 해도 된다는 의견을 냈다. 협회는 실사에 참조하라며 은행연합회가 취합한 가상통화 거래소 명단도 증권업계와 공유하기도 했다.

증권업계는 가상통화 거래소에 막대한 규모의 자금이 유입돼 자금 입출금 서비스를 제공하는 은행들이 적지않은 수익을 내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역차별이라고 주장했다. 현재 빗썸 등 은행에서 가상계좌를 개설해줬던 가상통화 거래소들의 경우 법인계좌로 입금된 자금이 은행 명의의 신탁으로 이관돼, 여기서 발생한 이자 수익을 은행이 가져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십억~수백억원의 이자 수익을 손쉽게 벌 수 있는 구조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현재 증권사도 자금세탁방지(AML) 관련 업무를 은행과 동일하게 수행하고 있는데 금융위가 노골적으로 은행권의 편만 들고 있다"며 "증권사는 예탁금 이용료가 명문화 돼 있어 투명하게 자금을 운영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가능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