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능후 장관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자의 의결권 행사 지침) 제도를 도입한 이후 한진그룹이 첫 적용 대상이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한진 조양호 회장 일가는 '갑질 논란' 등으로 물의를 빚은 바 있어 한진그룹이 스튜어드십 코드의 첫 타깃이 될 것이란 전망이 있어 왔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장을 맡고 있는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16일 새해 처음으로 열린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에 참석, "대한항공과 한진칼에 대한 주주권 행사 관련 안건에 대한 오늘 논의가 수탁자 책임에 관한 원칙(스튜어드십 코드)을 이행하는 첫 번째 사례가 될 것"이라며 "투명하고 공정하게 주주권을 행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연금은 현재 대한항공의 2대 주주로 지분 11.56%를 보유하고 있으며, 한진그룹의 지주사 역할을 하는 한진칼 지분은 7.34%를 보유한 3대 주주다. 하지만 국민연금 공식 기구가 주주권 행사 여부를 검토하기도 전에 소관 부처 장관이 미리 결론을 내린 듯한 발언을 한 것은 문제다.

이날 회의에선 기금운용위 산하에 있는 민간 전문가와 시민단체 출신 등으로 구성된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가 대한항공과 한진칼에 대한 국민연금의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 여부를 검토할 것을 의결했다. 최종적인 주주권 행사 여부는 2월 초에나 나올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재계에선 국민연금이 정부의 입김에서 독립적이지 않은 상태에서 스튜어드십 코드가 기업 경영 간섭에 악용될 우려가 있다는 문제를 제기해 왔다. 국민연금 운용의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기금운용위 위원장을 보건복지부 장관이 맡고 있고, 20명의 기금 위원 중 정부 부처 차관이 4명 들어가는 등 '정부의 입김'이 강하게 미칠 수 있는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주주권 행사 여부를 검토하는 수탁자책임위 위원 14명도 기금 위원들의 추천을 받아 결국 복지부 장관이 위촉하도록 돼 있다.

만약 국민연금이 대한항공과 한진칼에 '경영 참여' 주주권을 행사하기로 결정하면, 3월 두 회사의 주주 총회에서 임원의 선임과 해임 등 경영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주주 제안을 할 수 있다.

여기에 더해 한진그룹에 대한 경영 감시를 강화하겠다고 밝힌 국내 행동주의 사모펀드 KCGI(강성부 펀드)가 한진칼 지분 10.71%를 갖고 있어, 증권가에선 국민연금(지분율 7.34%)이 KCGI와 외국인 투자자들과 합세할 경우 조양호 회장 일가의 경영권을 위협할 수 있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한진칼은 조양호 회장과 특수 관계인이 28.93%의 지분을 갖고 있다. 현재 시가총액 30대 기업 중 국민연금이 최대 주주인 곳은 삼성전자와 포스코, 네이버, KB금융지주 등 7개에 이른다. 유정주 한국경제연구원 기업혁신팀장은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한 다른 국가에서도 공적인 연·기금이 직접 의결권을 행사하는 경우는 드물고, 일본의 연·기금은 의결권 행사를 외부 자문 기관에 위탁한다"며 "정부의 경영 개입 여지를 차단할 수 있는 제도가 먼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국민연금은 지난해 -1.5%(잠정)의 기금운용 수익률을 기록했다. 기금운용 연 수익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했던 2008년(-0.18%) 이후 처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