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금융감독원에 전체 직원의 42%에 달하는 3급 이상 직원 수를 공공기관 평균인 30% 아래로 줄이는 계획을 내지 않으면 1월 말 금감원을 공공기관으로 지정해 예산과 경영을 통제하겠다는 방침을 통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금감원이 요구를 이행하려면 200개가 넘는 팀장급 이상 간부 자리를 없애야 해 금감원 지도부와 노조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정부는 최근 금융감독원에 3급 이상 간부 자리를 공공기관 평균인 30% 아래로 줄이는 계획을 내지 않으면 금감원을 공공기관으로 지정하겠다고 통보, 금감원 내부에서 반발이 나오고 있다. 금감원은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 회계 사건 등을 둘러싸고 금융위원회(정부)와 긴장 관계를 형성해 왔다. 사진은 윤석헌 금감원장이 지난해 5월 금감원장 임명 직후 서울 종로구 통의동 금융감독연수원에서 걸어 나오는 장면.

◇금감원, 방만 조직 수술 거부

금감원은 전체 수입 3500억원에 달하는 예산 중 3분의 2가 넘는 돈을 민간 금융회사들이 내는 '감독분담금'을 받아 운영한다. 이 때문에 '금융감독 서비스를 하는 민간기관'이라는 논리를 방패 삼아 공공기관 지정을 기피해 왔다. 공공기관이 되면 예산과 인력에 대해 정부 감독을 받고 매년 경영평가를 받아 점수가 부진하면 성과급도 깎인다. 특히 기관장 평가가 최악일 경우 정부가 해당 기관장을 해임 건의할 권한도 있다.

금감원을 공공기관으로 지정하자는 여론이 거세진 것은 재작년 가을 최수현 전 금감원장이 2014년 국회의원의 아들을 채용시키려고 채용 기준과 면접 점수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다. 실제 금감원은 작년 1월 공공기관 지정 일보 직전까지 갔다. 하지만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직접 나서 적극 반대 의사를 내고, 이에 기재부도 "1년 동안 공공기관에 준하는 경영 공시, 채용 비리 개선 조치, 상위 부처 경영평가, 감사원이 지적한 개선 조치 이행 등 네 가지 조건을 이행하면 지정을 하지 않겠다"며 물러섰다.

1년이 지난 현재 금감원은 작년의 네 가지 약속 가운데 경영 공시, 채용 비리 개선, 경영 평가는 비교적 성실하게 지켰다. 그러나 금융위가 행한 경영 평가에서는 2년 연속 'C'를 받아 경영 개선 성과가 신통치는 않다. 특히 2017년 9월 감사원이 금감원 감사 결과 요구했던 '상위 직군 인력을 공공기관 평균치인 전체의 30% 수준으로 줄이라'는 요구에 대해서는 아직 해법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금융당국은 작년 말 '금감원 운영 혁신 추진 성과와 올해 금감원 예산' 자료를 냈는데, 당시 금감원이 "향후 10년에 걸쳐 3급 이상 간부직군 비중을 35%까지 줄이겠다"는 안을 내놓은 게 전부다. 이런 상황에서 1월 마지막 주에 올해 공공기관 신규 지정 심사가 이뤄진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금감원 안이 (감사원 요구에) 미진하다. 그것도 10년에 걸쳐서 하겠다니 사실상 정권이 지나가면 안 하고 뭉갠다는 말 아니냐"고 했다.

◇'금융 당국 내전(內戰)' 해석도

금감원은 상위 직급이 많은 역삼각형 조직 구조다. 직원 평균 연봉이 1억원 안팎으로, 4개 대형 은행보다 1000만원 가까이 많다. 특히 3급 이상 직원의 연봉은 1억원 중반에 이르는 경우도 허다하다. 익명을 요구한 국내 증권사 CEO는 "2000명 회사에 1억원 넘는 고액 연봉을 받는 3급 이상 직원이 800명이 넘는다니 말이 되느냐"고 했다. 다른 보험업권 관계자도 "금융 개혁에 앞장선다면서 스스로는 간부 자리를 못 줄이겠다니 누가 수긍하겠냐"고 했다.

금감원은 1~3급 직원 비중을 30% 이하로 급격하게 줄이게 되면 조직 운영 자체가 어려워진다고 주장한다. 금감원 관계자는 "1~3급 직원들이 정년이 되어서 회사를 떠날 때까지 기다리거나 임원들을 대거 내보내는 게 불가피한데, 1~3급 비중이 30% 이하가 될 때까지 수년간 4급 직원들을 승진시킬 수가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며 "4급 직원들이 3급이 되는 데 지금도 10년 안팎이 걸리는 상황이라 불만이 클 수밖에 없다"고 했다.

금융계와 관가 안팎에선 그동안 금융 개혁과 정책 주도권을 놓고 윤석헌 금감원장 등 민간 출신 정권 실세(實勢) 라인과 금융위원회 사이에 벌어졌던 긴장 관계가 금감원의 방만 경영과 이에 대한 통제권을 두고 내전(內戰) 양상으로 번지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문제와 금융회사 종합검사 부활 등 사사건건 금융위와 금감원이 신경전을 벌였는데, 금감원의 비정상적인 조직과 인력 운용을 두고 금융위가 '건수'를 잡았다는 얘기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지금 금감원 계획 정도로는 (공공기관) 지정을 피하기 어렵다"고 말했다.